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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음식, 평론은 넘치고 담론은 없다

2010.02.02 | 조회수 333

대중평가의 시대…전문적 훈련 받은 평론가 육성해야”

음식과 식당 이야기가 넘쳐난다. 메뉴판, 윙버스 등 맛집 정보 사이트는 물론이고 주기적으로 맛집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파워블로거들의 블로그 조회수는 하루 1만회를 웃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열풍을 타고 스마트폰 사용자의 위치정보를 활용해 가장 가까운 맛집 정보를 안내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이 개발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음식, 맛집 정보의 가공이 이뤄지고 있다. 그 한편에선 한식 세계화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사실 음식과 평론은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다. 인터넷과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전국민이 맛 감별사, 음식 평론가를 자처하는 시대가 됐지만, 음식에 관한 본격적 담론은 없다.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음식평론이 필요한 시대라고. 혹자는 말한다. 비로소 음식평론의 대중화가 이뤄졌다고.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가.

<미슐랭 가이드> 3스타를 받은 세계적인 스타셰프 피에르 가니에르가 자신의 이름을 따 서울 롯데호텔에 연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에서 미식가들이 식사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 미식문화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으나 체계적인 음식평론은 부재하다.

<미슐랭 가이드> 3스타를 받은 세계적인 스타셰프 피에르 가니에르가 자신의 이름을 따 서울 롯데호텔에 연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에서 미식가들이 식사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 미식문화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으나 체계적인 음식평론은 부재하다.

음식평론의 역사는 레스토랑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본디 레스토랑은 요리사가 만드는 원기회복용 스프를 뜻했는데, 손님이 메뉴를 주문하고 이를 먹고 값을 치르는 식사 제공용 시설로 재정립된 것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다. 앙시앵 레짐(프랑스 혁명 이전의 구체제)이 무너지면서 유력 귀족가문의 요리사들이 레스토랑으로 나서면서다. 이어 19세기 변호사 출신 브리야 사바랭이 역작 <미각의 생리학>을 통해 미식법(gastronomy)을 인간의 영양, 음식과 관련된 모든 질서와 훈련을 아우르는 학문으로 명명하며 미식을 폭식, 탐욕에서 분리시킨 뒤 미식에 대한 담론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본격적인 레스토랑 평가서가 나오는 데는 100여년이 걸렸다. 세계적 권위의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가 처음 나온 것이 1900년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 국경을 넘은 사람들의 이주, 여행의 보편화와 함께 각국 요리가 전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다국적 미식문화가 세계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파리, 뉴욕, 홍콩, 싱가포르 등은 지금도 미식의 천국으로 위상을 굳히고 있다.

음식, 평론은 넘치고 담론은 없다

한국의 미식문화는 그 역사가 그리 깊지 않다. 일제시대 중식과 일식이 도입됐다고는 하나 근대적 외식문화 혜택은 소수의 부유층만이 누렸다. 현대적 의미의 미식문화는 1980년대 중반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해외 유수의 요리학교에서 요리를 배운 요리사들과 교육받은 경영자들이 식당을 열면서 지금과 같은 다양한 미식문화가 가능해졌다.

외국에서는 식당 평가를 할 때 평가원이 자신의 신분을 비밀에 부치는 것이 불문율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음식평론가의 한 마디, 한 문장이 한 식당의 운명을 좌우하는 에피소드가 종종 출현한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에서 음식 평론가로 나오는 줄리아 로버츠가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뉴욕타임스에 맛집 칼럼을 연재한 프랭크 브루니는 가발과 콧수염까지 동원하며 변장을 했을 정도였고 전세계 90여명 안팎으로 알려진 <미슐랭 가이드>의 평가원들에게는 메모를 하는 일도, 동행인과 웃고 떠들며 식사를 하는 일도 금기시된다.

국내 레스토랑 평가 사이트 ‘블루리본 가이드’

국내 레스토랑 평가 사이트 ‘블루리본 가이드’

국내 최초의 본격 레스토랑 평가서로 불리는 <블루리본 가이드>도 평가원들의 신분을 비밀에 부친다. 1000여곳의 식당 정보를 싣는 동시에, 이들 식당에 대한 등급을 푸른 리본으로 표시하는 이 가이드북의 평가방식은 얼마전 서울판이 나온 <자갓 서베이>와 <미슐랭 가이드>를 절반씩 섞어놓았다. <자갓 서베이>는 도시별로 전문가들이 이미 알려진 고품격 레스토랑을 추리면 이후 일반인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평가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평점을 낸다.

<블루리본 가이드>는 그 반대다. 자체 홈페이지에서 독자들의 평가를 받아 식당 1000여곳을 추리고 20여명의 미식가로 구성된 ‘블루리본 기사단’이 방문해 평점을 매긴다. 김은조 편집장은 “우리나라 레스토랑 문화의 역사는 10여년 안팎으로 짧은 데다 체계화된 평론도 없다. 지금도 사실 정확한 척도에 따라 점수를 매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대중의 평가를 신뢰할 수도 없어서” 대중의 평가에 전문가 그룹의 평점을 합산하는 평가방식으로 매년 책을 펴낸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 음식·식당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는 <블루리본 가이드> <다이어리R> <자갓 서베이>와 같은 책과 인터넷사이트·블로그 등으로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음식평론은 부재 중이다. 언론의 맛집 소개나 방송 프로그램을 신뢰하는 이들은 드물다. 음식평론가를 자처하는 대부분의 국내 필진들 역시 감성적으로 접근할 뿐 음식에 대한 과학적 접근과 비판은 하지 못한다. 블로거들의 맛집 리뷰는 더더욱 검증이 어렵다.

세계 도시별 레스토랑 평가 사이트 ‘자갓 서베이’

세계 도시별 레스토랑 평가 사이트 ‘자갓 서베이’

음식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소 교수는 “음식 평론은 어느 집이 맛있다는 것보다 위생상태와 서비스, 요리사가 얼마나 소신을 갖고 조리학적 원리와 맛을 구현하느냐를 글로 표현하는 것”이라며 음식 평론가는 전문화된 영역이라고 말했다. “음식 평론은 훈련받은 이가 아니면 쓸 수 없다고 봅니다. <미슐랭 가이드> <자갓 서베이> 등은 표준화된 조리법을 가지고 있는 유럽 음식을 기본으로 하다보니 기준을 갖고 전문적으로 평가하기가 쉽습니다만, 종류가 다양한 한식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평가할 수 없지요.” 그는 시간이 지나야 음식문화가 성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구의 미식문화 역사가 200여년 됐는데 체계적인 음식평론은 20세기 중반에야 나타납니다. 더욱이 한식 조리법의 표준화도 이뤄지지 않은 마당에 음식비평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나 맛을 평하고 음식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을 육성해야 음식문화의 발전이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윤민용 기자


원문 링크: https://www.khan.co.kr/article/201002021740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