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쉐프, 세기의 레스토랑' 출간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개구리에게 올챙이 시절이 있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것처럼,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유명 레스토랑의 수석 주방장도 견습 시절이 있고 재앙에 가까운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200년전 프랑스의 미식가 샤바랭은 "진실로 헌신적인 쉐프라면 어떤 식사에서 발생한 재앙이라도 단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황금같은 순간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멕시코 칸쿤의 아쿠아 호텔 레스토랑 수석 쉐프인 미쉘 번스타인의 견습시절이 그렇다.
홀에는 유명 여배우와 전설적인 쉐프 장 루이 팔라댕(미국의 천재적인 요리사로 후에 미쉘의 스승이 됨)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 견습요리사였지만 극도의 완벽주의자인 미쉘에게 '푸아그라 테린'(거위나 오리의 간으로 만든 전채요리의 하나)의 마무리 작업이 맡겨졌다.
전통 프랑스 요리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한 푸아그라 테린을 '망치지 말 것'이 바로 미쉘의 임무.
하지만 왼손으로 샐러드를 접시에 담고 오른손으로 테린을 집어 들다 초콜릿 소스가 출렁거리는 그릇에 빠뜨리고 말았다.
초콜릿 속으로 녹아들어 모양이 망가진 테린을 꺼내 놓고 황망해하던 미쉘은 어린시절 보았던 땅콩버터 초콜릿 광고를 떠올리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땅콩버터를 나르던 사람과 초콜릿을 나르던 사람이 모퉁이를 돌다 부딪치고 초콜릿이 땅콩버터 속으로 들어갔지만 두 사람은 그 혼합물을 맛보고 놀라서 숨이 막힌다는 내용이다.
결국 '푸아그라 테린'은 '초콜릿이 칠해진 푸아그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접시는 깨끗이 비워져 돌아왔고, 주방장이 들어와 고함치는 일도 생기지 않았다.
몇 년 뒤 마이애미의 호텔 레스토랑 주방장이 되었을 때 미쉘은 '초콜릿 몰레가 곁들여진, 겉을 살짝 구운 푸아그라'를 자신의 대표요리로 만들었다.
'세기의 쉐프, 세기의 레스토랑'(클라이닉스 펴냄)은 세계에서 스타의 반열에 오른 유명 요리사들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수 십 종류의 메뉴가 준비되고 수 천개의 접시가 오가는 복잡한 주방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주방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에피소드'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에게는 '대재앙'이다.
국제회의에 참석한 3천200명이 먹을 바다가재 1천 마리가 식사 13시간 전 "맛이 가버린" 사실을 알았을 때 페란 아드리아(스페인의 전설적인 레스토랑 '엘 불리'의 수석 쉐프)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고 그 후로도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공포와 불확실성, 공황상태로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도시에 있는 모든 바다가재를 모았지만 겨우 500마리. 1인당 분량을 3조각에서 2조각으로 줄이고 참석자가 200여명 줄어드는 행운이 더해져 무사히 재앙을 넘기고 "냉장보관해야 할 재료를 스티로폼에 넣어 냉장고에 두지 말 것"이란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책은 세계 곳곳의 유명 레스토랑 소개도 부록으로 덧붙였다.
킴벌리 위더스푼ㆍ앤드류 프리드먼 엮음. 김은조 옮김. 432쪽. 1만3천원.
eoyyie@yna.co.kr
원문링크: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934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