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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콰이어] [FOOD] 전문가들의 입에서 '와우' 소리가 나오게 만든 8개의 요리

2022.06.11 | 조회수 820

뭔가를 먹으면서 좀처럼 놀랄 일이 없는 사람들, 셰프이거나 미식 기자이거나 미식 잡지의 편집장인 이들에게 물었다. 당신이 최근 입에 넣고 ‘와우’를 외친 요리는 무엇인가?

박세회 BY 박세회 2022.06.11

 

THE GREEN TABLE - Autumn Lobster


더그린테이블 - 가을 로브스터

우리나라 1세대 오너 셰프인 김은희 셰프의 더그린테이블은 오픈할 때부터 로브스터 요리로 손에 꼽혔다. 하얀색 폼으로 된 뵈르 블랑 소스 안에 숨어 있는 탱글탱글한 붉은색 로브스터의 자태는 플레이팅부터 우아함 그 자체였다. 얼마 전, 오랜만에 방문했을 때도 여전히 코스에는 로브스터 요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그때 그 로브스터 디시와는 확연히 달랐다. 여전히 예쁘게 껍데기를 바른 로브스터 살이 담겨 있었으나, 소스는 갈색 부야베스로 바뀌었고, 인상적인 배춧잎 부각이 우산처럼 그 위에 올려져 있었다. 바싹 말린 후 튀겨 부각으로 만든 뒤 온갖 허브와 꽃잎으로 수놓은 그 배춧잎을 김은희 셰프 본인은 ‘니케의 날개’라고 표현했다. 정말 하늘로 날아갈 듯한 날개의 모습처럼 보였다. 배춧잎 부각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요리다. 투명하게 비칠 듯 얇은 부각은 설명을 듣기 전에는 배추라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한입 베어 물면 바사삭 부서지면서 입안을 채우는 가벼운 식감과 플레이버는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야 완성되는 복잡하면서도 깊은 맛이다. 최근 사찰 요리에 정진하고 있는 셰프가 추구하는 한식과 프렌치의 만남이다. 김은조(〈블루리본 서베이〉 편집장)

 

EATANIC GARDEN - Spring Greens

이타닉가든 - 봄나물

유난한 한국인의 소고기 사랑 때문에 우리나라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은 한우 스테이크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 레스토랑을 자주 찾는 사람이라면, 가끔 스테이크가 지겹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타닉가든의 셰프 손종원은 영리하게도 우리가 애정하는 또 하나의 식재료인 전복을 사용해 전형적인 스테이크의 모습을 탈피했다. 얇게 썬 울릉도 칡소와 전복을 켜켜이 올려 비장탄 숯불에 굽고 솔향을 입혔다. 한우의 고소한 맛과 전복의 탄력 있는 식감이 잘 어우러져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향연이 입안에서 펼쳐진다. 얇게 썬 소고기와 전복 레이어가 본드로 붙인 듯 단단히 결합되어 있어 칼을 대면 하나의 오브젝트처럼 이물감 없이 잘린다. 만든 사람의 정성과 기술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다. 사이드 디시로 함께 나오는 봄나물 플레이트는 이타닉가든(eat+botanic garden)이라는 상호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데치거나, 절이거나, 굽거나. 각기 다른 기법으로 조리된 나물들이 한 플레이트에 아름답게 담겨 있다. 김은조(〈블루리본 서베이〉 편집장)

 

PINGHAO - Dongpayuk

핑하오 - 동파육

이것은 조림의 미학이다. 중식당 핑하오의 동파육은 더없이 부드럽다. 우리가 익히 아는 다른 중식당의 정사각형 동파육과는 격이 다른 질감이다. ‘입안에서 녹는다’는 표현이 진부할 정도다. 잘 녹은 버터가 혀 위에서 제 자랑을 한껏 해도 이만할 수가 없다. 이런 식감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은 생김새다. 이 집 동파육은 길게 자른 편육처럼 납작하다. 큐브 같은 덩어리가 아니다. 물기 가득한 소스와 만나는 면적이 넓다는 얘기다. 〈에스콰이어〉에서 촬영한 사진과는 달리 실제 이 집의 동파육은 흥건한 소스에 푹 잠겨 나온다. 짭조름한 소스가 뚝배기 같은 그릇 안에서 쉼 없이 고깃결 사이로 스며든다. 소스에 잠긴 시간이 길수록 보드랍다. 다음으로 따져볼 것은 조리법이다. 핑하오의 왕병호 셰프는 과거 호텔에서 근무할 때 홍콩에서 기술 전수차 방한한 중국인 셰프에게서 이 독특한 동파육 조리법을 배웠는데 부드러운 식감을 극대화하는 게 특징이다. 일단 도톰하게 자른 돼지고기를 조린 다음, 한 번 튀긴다. 그걸 다시 삶고 다시 조리고 또 그걸 급속 냉동한 후 손님들이 찾을 때마다 납작하게 잘라 낸다. 소스도 튀긴 완자를 으깨고, 키조개 등을 잘라 넣어 굴소스 등과 함께 3일 조린 것이다. 하얀 밥과 비벼 먹으면 금상첨화다. 박미향(〈한겨레〉 음식문화기자)

 

JUEUN - Galbijjim

주은 - 갈비증

비슷한 고기 음식이라도 씹을 때의 느낌은 천차만별이다. 레스토랑 주은의 고기 요리 ‘갈비증’은 마치 고깃결 사이에 공기층이 형성된 것처럼 보드랍다. 공기층이 스시 샤리의 밥알 사이에 들어차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 공기층이 스시의 식감을 배로 부드럽게 한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 갈비증 역시 고깃덩어리가 죽처럼 미끄러지듯 넘어간다. 물론 과장된 비유다. 그만큼 고기 요리치곤 부드럽다는 소리다. 이 식감을 만들려고 채 썬 소 갈빗살을 뭉쳐서 양념에 버무린 후 쪄서 만들었다. 양파와 표고버섯도 갈아 넣는다. 채소의 감칠맛이 더해지는 이유다. 이 갈비증의 화룡점정은 떡갈비에 올리는 고명이다. 으레 고명 하면 알록달록한 지단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음식에는 특이하게도 밤가루(고물)를 올린다. 언뜻 보면 밤가루인지 모른다. 보슬보슬 춤추는 우유 빛깔 가루는 밤을 5분 정도 굽고, 3~4분 찐 다음 다시 2분 정도 오븐에서 구운 후 갈아서 탄생한 것이다. 사람의 손길이 여러 차례 들어가니, 그만큼 공들인 맛이다. 레스토랑 주은의 박주은 셰프는 ‘진주 허씨 묵동댁 내림음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종가 음식은 정성이 맛의 반이다. 〈에스콰이어〉 지면에 실린 사진에는 밤가루가 작은 언덕처럼 봉긋하게 쌓여 있으나, 실제 레스토랑에서 만나는 밤가루는 떡갈비 위에 평평하게 뿌려져 있다. 박미향(〈한겨레〉 음식문화기자)

 

DANGOK - Chestnut Montsil Tarae

당옥 - 밤치즈케이크 몽실타래

주문을 하면 접시 위에 쌀로 만든 카스텔라의 한 면에 커피 액상을 적셔 얹고, 그 위에 마스카포네 치즈와 크림치즈로 레이어를 만든다. 이게 밤치즈케이크 몽실타래의 속이다. 그리고 쇼가 시작된다. 접시를 제면기 아래 두고 마치 냉면의 면을 내릴 때처럼 분틀에 밤 무스를 끼우고 내린다. 냉면이나 메밀막국수 면을 뽑아내는 과정처럼 제면기를 통과해 나오는 가는 면발의 밤 무스가 크림치즈 레이어 위에 소복하게 쌓이는 걸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곧이어 포크로 한입 떠 먹어보면, 또 한 번 탄성이 나온다. 삶은 밤, 찐 밤, 구운 밤 세 종류를 섞어 만든 밤 무스는 한없이 우아하다. 고유의 메밀면 제면 압출 방식을 플레이팅과 프레젠테이션에 응용한 천재적인 감각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이유석(전 루이쌍끄 셰프)

 

GYEHYANGGAK - Steamed Fish with Minced Red Pepper

계향각 - 다진 홍고추 생선찜

‘다진’ 홍고추라고는 하지만, 그냥 다지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잘린 고추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단면도 깔끔하지 않다. 이건 고추를 살짝 으깨듯 굵고 거칠게 썰었다는 이야기다. 그 맛을 보면 그냥 그렇게 다지기만 한 것도 아니다. 숙성의 맛이 분명 그 안에 있다. 홍고추 자체는 숙성이 어렵다. 숙성하려 들면 썩기 십상이다. 대부분의 채소는 시간이 지날수록 물러지는데 홍고추는 질겨진다. 계향각의 칼판 장인 신계숙 교수는 이 홍고추의 식감에 적절한 액체와 시간을 더해 한 차원 위의 레벨로 승화시켰다. 빨간 고추는 재료의 부패를 막고 다른 재료의 숙성이 더디게 진행되게끔 하는 성질이 있다. 고춧가루를 넣은 김치가 고추 숙성의 대표적인 예다. 그 성질을 잘 이용하면 이런 소스가 나올 수도 있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달지 않고, 가벼이 맵지도 않다. 톡 쏘는 맛에 화사한 무언가가 입혀져 있으나 아래쪽에 무거운 추를 달고 있는 느낌의 매운맛이 중심이다. 이 숙성 양념의 맛에 생선에서 배어 나온 감칠맛 가득한 국물이 더해지니 그 힘이 강렬하다. 처음에는 생선찜이 주인공인 줄 알았다. 토실토실한 우럭이 얼마나 먹음직스러운가. 그러나 주인공은 생선이 아니다. 이것은 숙성된 홍고추 소스를 먹기 위해 우럭을 곁들인 요리다. 생선찜을 곁들인 다진 홍고추 소스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 홍신애(레스토랑 솔트 대표)

 

YOON SEOUL - Whole Wheat Noodle

윤서울 - 통밀면

그릇 안에는 면밖에 없었다. 면을 만드는 데는 오로지 통밀과 물만을 사용했고, 그 면을 잘 삶아 소금을 뿌려 간을 하고 들기름을 묻혔다. 그러고는 그 면을 툭 하고 그릇에 담았다. 그게 다다. 믿을 수 없겠지만, 그게 다다. 그러나 그 맛은 그게 다가 아니다. 면 자체에서 구수한 밀 풍미가 넘치고, 어디서 생겨났는지 은은한 감칠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가장 놀라운 건 면의 질감이다. 서걱하지도, 쫄깃하지도, 끈적하지도, 탱글탱글하지도 않다. 어떤 하나의 단어로 특징지을 수 없는 그 묘한, 그러나 네 그릇쯤 더 먹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그 질감은 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다. 씹어보고 나니 어째서 이렇게 냈는지 이해가 됐다. 면의 질감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한껏 살려야 하니, 양념도 국물도 방해가 될 거라 생각했으리라. 국물과 고기 고명 등 부가물에 비중을 두는 다른 한식의 면 요리와 차원이 다르다. 윤서울의 면은 단순한 면이 아니다. 이 면은 한국에서 면을 다루는 여러 요리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진다. 단 하나, 이 디시에서 면이 아닌데 힘을 준 게 있다면 들샘이란 개량종 들깨로 낸 들기름을 썼다는 사실이다. 들샘은 다른 들깨보다 향과 풍미가 강하고 기름이 많이 나온다. 이유석(전 루이쌍끄 셰프)

 

TODAY’S FOREST - French Toast

오늘의 숲 - 프렌치토스트

예전, 이탈리아에 살 때 옆집 에두아르도 할아버지는 아프리카 전쟁에 나갔다가 살아서 집에 돌아온 게 꿈만 같았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울면서 돼지비계 덩어리를 어디서인가 얻어와 수제 피치(pici) 파스타를 해주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먹을 게 없을 때였어. 사람들 소원이 기껏 고기 국물에 빵 적셔 먹는 거였다고.” 프렌치토스트의 원조는 사실 프랑스일 수도, 독일이나 영국이나 이탈리아일 수도 있다. 오래전, 좀 사는 유럽 사람들은 말라버린 빵을 수프나 고깃국이나 우유에 적셔 먹었다. 가난한 이들은 맹물에 적셨다. 말라비틀어진 빵을 수분에 담가 부드럽게 해서 먹는 건 자연스러운 발상이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미국에서 이 조리법이 히트를 쳤다. 정말로 젖에 적셔 꿀이나 시럽을 뿌려 먹는다. 우리가 먹는 프렌치토스트는 대략 미국식이다. 오래전 유럽 백성들이 말라버린 검은 빵을 맹물에 적셔 먹을 때 부자들은 판도로에 우유를 적셔 버터나 라드에 구워 먹었다. ‘판도로’(pandoro), 즉 ‘판 데 오로(pan de oro)’. 말 그대로 황금의 빵이며, 그 빵은 곧 브리오슈다. 물 대신 버터로 반죽한 미친 빵. 프렌치토스트의 왕족 버전. 한국에서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가 우연히 속초의 한 작은 브런치 바에서 왕족의 빵으로 구워낸 황금의 브리오슈를 발견했다. 식빵 나부랭이와는 다른, 둥근 브리오슈를 두툼하게 잘라 버터에 지졌다. 버터에 반죽하고 또 버터에 지졌다. 한입 베어 물면 혈관에 버터가 번진다. 박찬일(로칸다몽로 셰프)


원문 링크: https://www.esquirekorea.co.kr/article/67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