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리본 매거진

음식과 맛, 여행에 대한 이야기

돼지고기의 뉴 웨이브: 주당클럽의 미식플렉스 ①

2022.01.05 09:37:52

어려서부터 유독 식탐이 많았던 나는 갈수록 높아지는 우리 집안의 엥겔 지수에다 살이 찐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모진 핍박과 구박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소신을 지켜낸 결과, 현재는 하루 2회 이상 외식을 하는 자랑스러운 대식가로 성장하였다. 아무래도 먹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남보다 많이, 자주 먹기 때문에 맛이 있고 없음을 꽤나 잘 분별하는 혀를 자연스럽게 장착하게 되었고, 예민해진 내 입맛에 보상이라도 하듯 나의 소중한 식사들을 (마침 그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블로그라는 공간에 아카이빙 하기 시작하였다. 블로그 활동은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그래서 밤낮없이 열심히 한 덕에 1세대 파워블로거라는 명예(?)도 얻게 되었다.

 

처음 블루리본에 연재 제안을 받았을 때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고민도 했지만, 약 20여년 전 블로그를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내 입맛을 믿고 내 취향을 공유하는 차원이라면 도전해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생각되었다. 앞으로 너무 어려운 전문가적 입장이 아닌 외식을 사랑하는 한 대식가의 입맛으로 편안한 읽을거리를 나눠볼까 한다. 그것은 식재료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먹는 장소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아버님 말씀이 떠오른다. 전정한 미식가는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사람이 아닌, 어떤 음식이라도 그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며 미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 주셨다. 그런 범주라면 나도 미식가임이 분명하다. 당연히 종목 가리지 않고 먹는 것은 마다하지 않지만, 그래도 굳이 꼽자면 아마도 육식형 인간에 가까운 터라, 연재의 첫 주제를 꽤 쉽게 정할 수 있었다.


고기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요즘 특히 유행하는 돼지고기에 대해 한번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약 10여 년 전 모 식당에서 숙성을 외치며 유행하기 시작한 고깃집의 대세론이 확장되며 소고기는 물론 돼지 전문점의 형태도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맛집 블로거 시절, 왠지 모를 사명감에 휩싸여 해외 맛집 탐방에도 집중할 때가 있었다. 그때만해도 우리나라 삼겹살 1인분의 가격이 평균 6~8천원 선이었는데, 인기 부위인 소고기 등심 대비 4분의 1도 안 되는 아주 훌륭한 가격이 형성되었을 때다. 그런데 웬걸, 미국이나 유럽에 가보니 메뉴판 메인 디시 쪽에 떡 하니 자리잡은 돼지고기의 가격은 소고기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그 전부터 이 맛있는 돼지고기, 특히 삼겹살의 퍼포먼스 대비 가격이 매우 불합리하다 생각해왔던 터라 이런 고가의 돼지요리가 무척 반가웠고, 언젠가는 우리나라 레스토랑에도 맛은 물론 가격도 소고기와 견주는 상황이 오기를 기대해왔다.


한우는 특별한 종을 가리지 않고 소비되고 있지만 돼지의 경우 대부분 요크셔, 랜드레이스, 듀록, 버크셔 등을 3원교잡한 품종이 널리 소비되는 편으로 안다. 특히 최근에는 조금 더 세분화된 새로운 돼지 품종들이 눈에 띄기도 하는데,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또 돼지의 고급화를 바래왔던 사람으로서, 이런 다변화에 따른 가격 정책과 차별화는 기쁜 일일 수밖에 없다.

 

금돼지식당

가장 맛있는 돼지고깃집은 어디일까? 웨이팅 지옥을 견뎌야 하는 금돼지식당, 남영돈, 몽탄, 그리고 제주의 숙성도를 대표로 하여 동네마다 힙하고 핫한 돼지고깃집이 성행하고 있다. 이곳들은 맛있는 고기는 물론 메인을 받쳐주는 특색 있는 사이드 메뉴와 식사로 많은 고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나 역시 돼지고기를 자주 먹고 있고 유명한 식당이 생기면 대부분 방문하려 노력 중인데, 어떤 곳은 돼지의 품종을 강조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거기에 숙성기법을 더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도축 일을 기준으로 반드시 며칠 안에 소비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곳도 있다.


 

몽탄

사실 지방 분포도가 많은 삼겹살의 경우 품종과 숙성이 그렇게 차별화된 뾰족한 맛을 내지는 않는 것 같은데, 요즘 유행하는 삼겹살, 등심, 가브리살, 갈비 등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뼈등심의 경우 조금은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떤 숙성이 가장 맛있는지 그 누구도 쉽게 정의할 수 없을 것이지만, 분명 가게별 자신들의 개성을 살린 숙성 노하우를 통해 고기의 풍미와 연도를 충분히 개선하여 제공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요즘 유행하는 두꺼운 돼지고깃집들은 대부분 충분히 맛있다. 심지어는 얇게 냉동하여 판매하는 냉삼도 역시나 훌륭하다. 정말 어디가 베스트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들 맛있고 특색 있다. 그러면 다시 가장 맛있는 고깃집은 어디일까를 고민하다 최소 나는 이런 결론을 내리고 만다.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누구와 그 집을 방문하냐가 1번, 누가 고기를 구워주느냐가 2번, 그리고 얼마만큼 주연을 빛내줄 조연(사이드와 반찬)이 훌륭하냐가 3번일 것이다. 물론, 이 세 가지 모두 충족하기 힘든 숙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필자 소개  주 당 클 럽

2004년부터 블로그 활동을 시작하여 1세대 파워 블로거라는 명칭을 얻은 미식가이며 하루에 2회, 1년에 700회 이상 외식을 하는 대식가이기도 하다.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비밀로 하고 있지만, 그의 글을 유심히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짐작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