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리본 매거진

음식과 맛, 여행에 대한 이야기

J 키친을 아십니까 : 주당클럽의 미식플렉스 ②

2022.01.17 01:44:29

매월 어려울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는 주제 정하기. 이번 달은 특히나 어려운 것이, 안 그래도 잦은 외식인데 12월의 연말 특수까지 겹치며 약속이 엄청나다 보니 먹은 것도, 할 이야기도 많아 좀 더 시간이 걸렸다. 예전에는 자료들을 블로그로 아카이빙 했지만, 요즘엔 당연히 인스타로 하고 있는데 12월에 올린(먹은) 것들을 쭉 훑어보니 대단히 자랑스럽게도 종류 가리지 않고 많이 먹었더라. 글을 시작하면서 든 생각이, 어렵게 주제를 정하지 말고 매월 먹은 것들 중 인상적이었던 외식을 정리해 글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이번 달 주제는 12월의 미식플렉스. 다행이 부산 일정도 있던 터라 내용이 풍부할 것 같으니 나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부산 최고의 이시가리

업무 차 부산출장이 좀 있는 편인데, 처음에는 부산의 유명한 곳을 많이 다니려고 애써봤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여기도 일상적인 활동 영역처럼 되다 보니 나름 단골집만 가게 되더라. 그 중 꼭 빠지지 않는 유일한 두 곳이 동경밥상과 동백섬횟집. 두 곳 모두 상당히 유명하고 현지인과 여행객의 사랑을 많이 받는 곳인데, 우연히 대표님들과의 인연이 되어 항상 방문하고 술도 한잔 같이 마시곤 한다.

동경밥상

12월에 방문한 동경밥상은 더욱 의미가 있었는데, 다년간 일본의 가장 오래된 장어집인 쥬바코에서 수련한 김태우 셰프님이 메뉴에 없는 카바야키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원래는 히쓰마부시와 우나쥬, 우나돈 등 덮밥을 주로 판매하는데 오랜만에 서울 촌놈이 왔다고 굽고 찌고 다시 굽고를 반복하는 카바야키를 해주셨다. 그 맛은 지금껏 내가 먹은 장어를 다 부정하게 되는, 아주 못된 맛이었다. 원래 요리하는 사람이 고생해야 먹는 사람의 입이 즐겁지 않던가. 실례를 무릅쓰더라도 다시 한 번 부탁하고 싶은 맛이었다. 장어로 충분한 스태미나 섭취를 하고서 다음날 달려간 부산 1등 횟집으로 여겨지는 동백섬횟집.

정용진 부회장님의 단골집으로도 유명한데, 그토록 맛있는 이시가리도 이 집 묵은지에 묻혀 김치맛집으로도 불리는 재미있는 곳이다. 자연산만 판매하는 아주 솔직한 집인데, 이시가리를 구하기 위해 일주일에 여러 차례 차를 끌고 전국 각지를 다니는 오너 가족들에게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래도 이 집은 김치가 1등이다. 갈치를 넣어 삭힌 빨간 묵은지, 그 묵은지를 씻어서 제공하는 회 용 씻은지, 이 둘 다 절대 서울에서는 먹을 수 없는 맛이다.  오죽하면 김치만 별도로 서울로 주문해서 드시는 정 부회장님의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동백섬횟집: 그 귀하다는 자연산 이시가리(줄가자미)



해장에는 역시 찌개

어느 주말 아침 해장이 절실해 모두의 오랜 단골인 장독대김치찌개로 향했다. 솔직히 이전만큼 쨍한 맛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래도 아침 일찍 열어주는, 이만큼 감사한 곳도 몇 없다. 아쉬운 맛은 나의 토핑 기술로 채우면 되니 온갖 재료를 투입하여 원하는 비슷한 맛으로 만들어버린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오는데 새벽부터 삼겹살에 소주 마시고 있는 젊은 친구들을 보니 나 어릴 적 생각나고 반갑더라.

장독대김치찌개


또 하나는 코로나 이후 영업 형태가 변경된 역삼동의 가야식당인데, 원래는 24시간 냉삼과 백반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아주 특출나지는 않지만, 하나하나 빠지지 않는 적당한 우등생의 느낌인데 오랜만에 들러 맛본 부대찌개는 최근 맛본 곳 중 제일 나았다. 원래 부대찌개를 좋아해 찾아 다니며 먹던 때도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유명하고 좋아하던 ㄱ부대찌개와 ㅇ부대찌개 다 맛이 변하고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는데 가야를 지정하고 먹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 끼였다.


12월의 가장 인상적인 곳은 J 키친

감히 베이징덕 1위라고 할 수 있는 더 라운드, 지방이 깨끗하게 손질되어 나오는 곱창의 곰바위, 스페인과 유럽에서 경력을 쌓은 셰프가 오픈한 기가스, 그리고 마법처럼 다음날 몸이 붓지 않고 모든 메뉴가 심각하게 맛있는 중국집 가담 등 12월에 인상적이었던 여러 곳이 있는데 그 중 하나만 뽑자면 단연 모 대기업 총수께서 직접 요리하는 J 키친.

더라운드: 베이징덕

기가스

가담: 누룽지탕수육

이분은 미식가로도 유명하고 요리를 취미 삼아 스트레스를 푸는 수단으로 잘 이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초대해서 다양한 중식요리 실력을 뽐내기도 하는데 나는 운이 좋게도 몇 번 방문 할 기회가 있었다.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본인이 만든 음식을 싹싹 비우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인지 내가 방문하는 날에는 좀 더 신나 보이기도 하시고, 술도 더 드시는 것 같은데 다음날 들은 얘기지만, 이번 일정처럼 술이 많이 취해 요리하기는 처음이라 하시더라. 하여튼 이번 12월의 그곳은 정말이지 어나더 레벨이란 이런 것 임을 확실히 보여주는 특별한 날이었다. 여담인데, 웍질을 얼마나 하셨는지 왼팔에는 털이 다 타 하나도 없을 정도로 그 열정이 대단하시더라.

12월 모임의 시작은 시그니처 디쉬인 차가운 족발, 고전 레시피를 재현한 전가복, 총수께서 대학생 때 안주로 즐겨 드셨다던 경장우육사, 미국산 던지네스 크랩으로 만든 싱가폴 화이트 크랩, 아메리칸 소울 차이니스 쿵파오 치킨, 특급호텔 스타일 칠리새우, 숙성 잘된 한우 투뿔등심으로 만든 탕수육, 짜장면에 볶음밥까지 말도 안 되는 이 긴 코스의 정점은 라즈지 해삼. 보통 라즈지는 잘 튀긴 닭에 중국 산초와 고추를 함께 볶아 먹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사천 지방의 맛인데, 거기에 해삼을 튀겨 중간중간에 섞어 줬더니 정말 처음 먹어보는 식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뜻 부드러운 도가니 같은 느낌도 나고 탱글탱글한 젤리 느낌도 나고, 아무튼 분명 처음 먹어보는 식감과 어우러짐. 역시 많이 먹어본 사람의 요리는 다르긴 다르다. 개인적으로 중식을 좋아하기도 하고 미국식, 화상식, 호텔식, 노포식 안 가리고 선호하긴 하는데, 작년 이분의 중식을 처음 맛본 후 부터는 그토록 애정하던 신라호텔과 조선호텔을 자연스레 멀리하게 되었다.

J키친: 족발

J키친: 라즈지 해삼


1월은 어떤 맛집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12월 많은 모임을 끝으로 자중하려 마음먹었지만, 이미 그 생각은 온데간데 없고 글을 쓰는 와중에도 오늘 점심은 뭘 먹을지 고민하는 나. 한 끼를 먹더라도 허투루 먹을 수 없는 건 오늘의 한 끼는 평생 단 한 번뿐이기 때문이겠지.


필자 소개  주 당 클 럽

2004년부터 블로그 활동을 시작하여 1세대 파워 블로거라는 명칭을 얻은 미식가이며 하루에 2회, 1년에 700회 이상 외식을 하는 대식가이기도 하다.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비밀로 하고 있지만, 그의 글을 유심히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짐작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