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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맛, 여행에 대한 이야기
새해를 맞이하여 어떤 것들을 먹었을까 정리하다 보니 역시 믿음직하게 많이 먹긴 했다. 특히나 재미있던 부분은 우연히 유학파 셰프의 업장을 많이 다녔더라. 유학을 하고 왔다고 해서 반드시 더 잘한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확실히 다양한 경험과 스펙트럼이 주는 복잡 미묘한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다. 물론 나는 셰프는 아니지만, 어릴 적 해외 여행 경험과 거주 경험으로 아무래도 다양한 음식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해외에서 먹었던 비슷한 맛을 찾으려 국내에서 많이 돌아다니기도 했었고, 그로 인해 내 미식의 폭이 자연스레 넓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현지 맛을 그대로 구현한 authentic 레스토랑이 자리 잡지 못하였는데 코로나 이후 국내 소비 촉진과 더불어 해외여행을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당을 찾아주면서 최근에는 꽤나 강세를 펼치는 것으로 보인다.
<기가스>
코로나로 귀국한 셰프가 새로운 콘셉트의 레스토랑을 열었다. 이름도 독특한 기가스. 정하완 셰프는 국내 경험은 거의 없고, 독일 미쉐린 스타 “라비”와 스페인 “무가리츠” 등지에서 활동하다 최근에 귀국했단다. 지중해 레스토랑을 표방한다는데, 우리가 아는 지중해식은 병아리콩, 올리브오일, 페타치즈 등의 그리스 음식이 아니던가? 무슨 자신감으로 지중해 불모지에 도전장을 던졌는지 궁금해서 안 찾을 수 없었다.
대화를 해보니 정셰프의 지중해는 우리가 알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스페인, 이태리, 프랑스, 모로코 인접의 지중해식을 표방하고 다양한 스파이스와 해산물이 주로 쓰여진다. 레시피는 수백년 전부터 내려오는 복잡한 고된 방식을 택했으나 완성된 디시는 의외로 심플하다. 정셰프가 이야기하는 지중해에서 먹는 맛을 구현하려면 현지 식자재를 사용해야 하는데, 소싱이 불가한 관계로 필요한 채소는 직접 재배하고 저장하며 해산물도 제주도 어부에게서만 받는다. 저장, 절임, 콩피, 에이징 등 음식이 손님 테이블에 나갈 때 까지 길게는 수개월이 걸린다. 이것이 정하완 셰프만의 꿈꾸는 지속 가능한 지중해 퀴진이 아닐까 싶다.
<강민철 레스토랑>
파인다이닝 왕좌에 오를 만한 또 한 명의 셰프가 귀국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알고 있던 분인데, 출장 차 파리에 갔을 때 처음 뵙고 꾸준히 안부하며 만나오던 사이다. 이름만 들어도 흥분되는 알랭 뒤카스, 조엘 로부숑, 피에르 가니에르 등을 거쳐 금의 환향한 강민철 셰프다.
청담동에 아담하지만 매우 강력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작년 말 오픈했다. 강셰프께 부탁하여 오픈런을 했었고 올 초 지인들과 또다시 방문하였는데 충격적으로 훌륭했던 첫날의 경험보다 한 층 짙어진 올해의 강민철은 그 새 성장한 모습이었다. 최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다녀보면 코스의 시작은 대부분 훌륭하나 코스를 거듭할수록 평이한 디시들이 아쉬웠는데 레스토랑 강민철은 코스의 마무리까지 흥분을 안겼다. 각 디시들을 하나씩 평가 한다는 건 나 같은 대식가의 영역이 아니니 패스할 것인데, 내가 느낀 강민철은 클래식 하면서도 모던하고, 화려하면서도 얌전하고, 익숙하면서도 독특했다. 이런 모순이 어디 있냐 싶겠지만 실제가 그렇고 내가 먹은 공수를 생각하니 25만원 이상의 코스가 심지어 싸게 느껴지더라.
<사브서울>
2022년 현재, 가장 예약이 어려운 와인 레스토랑이 있다. 예약 오픈 시 순식간에 마감되고 빽을 써도 가기 힘든 사브서울. 몇 해전 잘나가던 레스토랑에 사표를 던지고 뉴욕 행을 택한 김태성 셰프의 귀국 첫 작품이다.
김셰프는 모던 한식으로 유명한 뉴욕의 아토보이에서 근무하다 최근 돌아왔다. 아토보이는 철저히 뉴요커들을 겨냥한 트위스트 된 한식 메뉴를 서비스 하는 곳인데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에겐 호불호가 있지만, 핫하디 핫하단다. 또 아토보이의 성공을 바탕으로 아토믹스라는 코리안 가스트로노미를 선보였는데 미쉐린 2스타 획득과 더불어 2021년엔 월드베스트 레스토랑 47위에 자랑스럽게 랭크 되었다.
각설하고, 요즘 제일 핫한 사브서울에 인친인 김셰프님 찬스로 방문했는데 고객층이 매우 젊어 꽤나 놀랐었다. 이유인즉슨 누구나 사진 찍어 자랑하고 싶은 동굴 모양 입구와 와인 수입사에서 운영하는 곳인 만큼 좋은 가격대의 와인 리스트로 20대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느낌이었다. 이를테면 폭넓은 고객층을 가지고 있는 와인바 계의 노포 까사델비노의 엔트리 느낌이랄까?
메뉴의 경우 양식과 모던 한식을 두루 경험한 셰프답게 꽤나 “요즘” 느낌의 와인 디시들을 제공하는데 단맛, 신만, 짠맛, 매운맛 등 폭넓은 간과 스파이스들이 다양하게 사용된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와인 마시기에 좀 강한 느낌이었지만,이곳을 찾는 “요즘” 친구들은 아주 선호할 느낌이더라.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와인 레스토랑임에도 리스트가 조금 부족한데 아무래도 자사 수입 와인들로 리스팅 하다 보니 가격은 좋지만 스펙트럼이 조금 넓지 못한 느낌.
<고든램지버거>
끝으로 유학파는 아니지만 해외에서 바로 넘어온,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셰프의 업장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 고든램지의 버거 브랜드, 국내 최초로 고든램지의 식당이 생겼다. 10만원을 훌쩍 넘기는 최고가 버거와 기본 3~4만원 대의 버거 메뉴로 많은 이들의 우려와 달리 순항 중이다. 나 역시 이 가격대를 부담이나 불만 없이 지불할 고객들이 많을까 갸우뚱 했었는데 일단은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제공: 고든램지버거
수제버거가 유행하기 시작한지 10여 년이 되었고 최근 스매시드 버거의 형태로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긴 느낌이기도 한데, 어쨌든 다시 버거 시장이 부활한 느낌이다. 그래서 어쩌면 꽤나 좋은 시기에, 거기에 코로나로 해외길이 막힌 이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잘 잡은 느낌이다.
맛은 물론 좋다. 재료 본연의 맛에 집중한 고급스러운 버거는 흠잡을 데가 없다. 이 버거의 평을 묻는 지인들에게 동남아 고급 리조트의 풀 사이드에서 별 기대 없이 주문했는데 의외로 굉장히 맛있는 고급 버거가 서빙 되었을 때와 딱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 했다. 누가 먹어도 맛있는 버거, 하지만 누가 지불해도 같은 느낌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시그니처버거 헬스키친 (사진 제공: 고든램지버거)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의 다이닝 씬이 무척 진화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코로나가 이걸 가속화 시켰다고 보는데, 앞서 이야기 했듯이 막힌 여행길과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여유로워진 소비자의 자금 현황이 다이닝 문화의 고도화를 부추긴 것으로 생각된다. 시장은 어느 정도 공급자가 끌어가는 맛이 있어야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는데 그 역시도 소비자의 니즈나 취향이 기반이 된 새로운 카테고리 창출로서 가속화된다. 엄청나게 빨리 변화하는 국내 시장에서 소비자의 눈높이도 높아지며 새로운 문화가 폭발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대식가로서 올해에는 더 새롭고 성숙된 미식 문화를 기대해 본다.
필자 소개 주 당 클 럽
2004년부터 블로그 활동을 시작하여 1세대 파워 블로거라는 명칭을 얻은 미식가이며 하루에 2회, 1년에 700회 이상 외식을 하는 대식가이기도 하다.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비밀로 하고 있지만, 그의 글을 유심히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짐작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