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블로거의 후기가 맛집 선정의 기준이 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대다수 블로거가 상업적으로 변질했고 신뢰도는 추락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만의 소신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15년째 자비로 식당을 다니며 맛을 평가하는 블로거 배동렬(42)씨다. '비밀이야'라는 블로그 이름으로 더 유명한 그의 콘텐트는 음식을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선 신뢰를 의미한다. 15년간 블로그에 올린 식당 수는 셀 수 없을 만큼 방대하다. 현지인만 아는 지방의 해장국집부터 허름한 노포, 국내의 유명 파인다이닝을 비롯해 유럽과 일본의 식당까지 국내외를 망라한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의 맛집 정보엔 평균 ‘좋아요’ 수가 1000개를 넘을 만큼 인기다.
미식 블로그 ‘비밀이야’를 운영 중인 배동렬씨가 평소 즐겨 찾는 프렌치 레스토랑 ‘레스쁘아 뒤 이부’에서 연어 요리를 맛보고 있다. 최승식 기자
배씨가 블로그를 시작한 건 2004년부터다. 사회인으로 첫발을 디뎠던 회사를 그만두고 두 달간 유럽여행을 떠났다. 여행 준비를 하며 온라인에서 찾아본 정보들이 큰 도움이 됐기에 자신도 남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블로그를 열었다. '비밀이야'라는 이름은 서울대 재학시절 활동하던 테니스 동호회의 익명게시판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이후에는 자신이 다녀온 맛집을 하나둘씩 올렸다. 사진 없이 몇 곳을 적어놓고 가보라는 식의 글이었는데 댓글로 사진을 올려달라는 권유가 많아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함께 올리기 시작했다.
파워블로거 배동렬씨 미식 인생
국내외 식당 평가 높은 신뢰 쌓아
해장음식 열전 등 단행본만 4권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도 훑어
2004년 유럽여행 하며 진로 바꿔
솔직한 후기로 항의·고소 받기도
사실 그에게 식당은 무척이나 친숙한 곳이다. 어렸을 때부터 미식가인 아버지를 따라 맛집을 찾았던 데다 대학생이 된 후에는 신문기사나 잡지에 소개된 맛집을 스크랩했다가 나중에 친구들과 함께 찾아다닐 만큼 맛집 탐방을 즐겼기 때문이다.
전국의 해장국 맛집을 소개한 '전국해장음식열전'. [사진 BR미디어]
블로그를 하며 처음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즐거웠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질 뻔 했던 음식점이 자신의 글로 잘돼서 성공할 때 흐뭇했다.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해외로 시야를 넓혔다. 그는 “국내서 만족이 안되는 데다 원래 여행을 좋아해 해외까지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쌓은 콘텐트를 바탕으로 전국의 해장국 맛집을 모은『전국해장음식열전』을 비롯해 스페인·이탈리아의 미쉐린 레스토랑 등 미식 여행기를 담은 책들을 냈다. 이달엔 프랑스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비롯해 파리의 쌀국수 맛집, 여행 정보 등을 담은 책 『비밀이야의 맛있는 프랑스』를 발간했다. 책에는 그가 열네 번 프랑스를 오가며 직접 터득한 정보가 풍성하다. 특히 프랑스의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28곳을 모두 직접 다녀왔다. 배씨는 “프랑스는 확실히 음식의 완성도가 다른데 예를 들어 폴 보퀴즈처럼 정통 있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음식은 정점에 다다른 음식을 먹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배동렬씨가 최근 선보인 '비밀이야 배동렬의 맛있는프랑스'. 이책을 위해 배씨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28곳을 모두 다녀왔다. [사진 BR미디어]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꾸밈없는 솔직한 평가 때문에 간혹 혹평을 받은 식당에서 항의가 들어왔다. 고소로 이어진 곳도 있다. 배씨는 “2012년 ‘소비자가 불만을 표시하는 이용 후기를 인터넷에 게재했더라도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작성했다면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듯 표현의 자유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꾸준히 논란이 되는 블로그의 상업화에 대해선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함께 활동했던 블로거들이 돈을 받고 글을 올려주거나 아예 가보지도 않고 업체의 사진과 정보를 받아 그대로 올리는 것을 자주 목격하기 때문이다. 그는 “블로거들이 왜 홍보글의 유혹에 빠지냐면 파워블로거의 경우 홍보글 한 건당 20~30만원을 주는데 하루에 2~3건을 올리면 50만~60만원, 한 달이면 최소 1500만원에서 2000만원을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에게도 한때 하루에도 수십 곳에서 블로그에 홍보글을 올려달라는 제안이 쏟아졌다. 요즘은 배씨가 홍보글을 올리지 않는 것이 알려지면서 제안이 줄었지만 종종 그를 사칭하는 일도 벌어진다. 한 식당이 개업하며 가게 앞에 놓은 화환에 ‘비밀이야’라는 이름이 적힌 것을 보고 지인이 연락했는데 배씨는 들어본 적 조차 없는 곳이었다. 자신을 사칭해 식당에 전화해 블로그에 홍보해주겠다며 인터넷으로 ‘비밀이야’를 찾아보라고 한 적도 있단다.
국내도 모자라 유럽과 아시아 곳곳을 자비로 오가는 그에게 ‘재벌 아니냐’는 우스개 소리도 들린다. 2015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는데 오히려 더 활발하게 활동하니 말이다. 그는 “아니다”라며 웃었다. 지금까진 30대 초반 자신이 키운 회사를 대기업에 매각하면서 받은 금액을 맛집 투어 자금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잔고가 얼마 남지 않아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회사까지 그만두고 맛집을 찾아 해외로 떠도는 남편을 보며 아내의 타박은 없었을까. 배씨는 “아내는 늘 내게 마음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준다”며 웃었다.
배동렬씨는 기업의 많은 영입 제안을 거절했다. 외식업 도전에 대해서는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식당을 해야하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최승식 기자
맛집 블로거로서의 최종 목표는 뭘까. 다른 유명 블로거처럼 기업에 들어갈 계획은 없는지 묻자 그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기업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많이 받았는데 대부분 해외의 어떤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올지 선정하고 이를 기획하는 일”이었다며 “하지만 그때마다 기업에 들어간들 몇 년이나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답이 나왔다”고 했다. 기업에 들어가는 건 앞으로의 장래 관련 고민을 몇 년 미루는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외식업을 고려 중일까. 실제로 블로그를 하며 쌓은 인맥과 손님들이 뭘 좋아할지 아는 블로거의 능력은 외식업을 할 때 큰 장점으로 작용해 많은 블로거가 외식업자의 길을 택한다.
“자존심일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 해온 게 있는데 남들하고 똑같이 삼겹살집이나 쇠고기구이 집을 할 순 없어요. 만약에 한다면 투뿔등심·본앤브레드처럼 외식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식당을 해야하지 않나 생각해요.”
온라인 유저 입장에선 '비밀이야' 블로그가 여전히 건재해서 도시 곳곳의 맛집들을 솔직하고 꼼꼼하게 소개해준다면 기쁜 일이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내 돈 들여 맛집 탐방 15년 “어디냐고? 비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