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리본 매거진

음식과 맛, 여행에 대한 이야기

재야의 고수를 재발견하는 기쁨 : 주당클럽의 미식플렉스 ⑤

2022.04.28 10:54:17

봄이 올 듯 말듯 날이 오락가락 하는 3월 외식의 콘셉트는 재발견이다. 새로운 곳을 열심히 쫓아 다닐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자주 가는 편안한 곳들을 주로 찾고, 또 그렇게 유명했음에도 이제야 알게된 숨은 강자를 찾아냈을 때와 자주 가던 곳인데 그 집의 포텐셜을 새롭게 발견했을 때 큰 희열을 느끼곤 한다. 매년 7백 회 이상 외식을 직업처럼 하면서도 아직도 안 가본 맛집이 있다는 것은 깊이 반성해야 마땅하다. 물론 새로 생긴 집이야 MZ 세대들이 찾아낼 몫일 수 있겠지만, 전통의 강자, 혹은 재야의 고수를 못 알아봤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당히 성질나는 일이다. 심지어 이번처럼 처음 들어보거나 새로 발견한 맛집의 경우에는 더더욱.


<정겨운 스댕 그릇에 담겨 나오는 우설 맛집, 태성집>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장위동 태성집을 이제야 가봤다. 아니, 부끄럽게도 태성집이라는 우설 맛집이 있다는 것조차 처음 들어본다. 비즈니스 차 만난 후배에게 노포식당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듣고 흥분이 되어 식사자리를 그곳으로 정했는데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생활 반경이 굉장히 좁은 편인 나는 강 건너기를 무서워하는 편인데, 노포라는 한마디에 용기 내어 마음먹고 태성집으로 향했다.

나이 지긋한 이모님의 안내로 2층 룸으로 올라갔고 입구부터 계단 뭐하나 거슬리는 것 없는 훌륭한 노포다. 메뉴 역시 노포의 전형인데, 단순한 구성과 적당한 가격이 벌써 흥분되게 하더라. 우선 안창, 살치, 치마로 구성된 모둠구이와 우설을 주문하니 심플한 반찬이 깔린다. 오랜만에 보는 새하얀 파무침과 시뻘건 무채 등이 준비되고 귀여운 플라스틱 바구니에 쌈채소가 올라왔다.

맛배기로 차돌이 서너 점 나오고 정겨운 스댕(?) 그릇에 모둠과 우설이 함께 가득 나오는데, 그 비주얼 자체가 이곳은 심각한 맛집이다. 요즘의 고깃집처럼 이 잡듯 정교하게 손질된 고기는 아니지만 투박하게 무심한 듯 던져진 고기를 불 위에 올리고 싶어 꽤나 마음이 급박하게 상황이 돌아가더라. 예상 이상으로 진한 고기 맛이 일품이고 특히 두툼하게 썰어진 우설은 단연 일등이다. 일본처럼 레몬즙, 마늘, 파 등이 올라간 것이 아님에도 잡내 없이 상당히 고급스러운 직화 맛이 이모님께 추가를 계속 외치게 한다.

충분한 단백질 섭취 이후 남겨진 탄수화물을 위한 배는 된장찌개로 채워진다. 고기국물 베이스에 커다란 멸치가 받쳐주며 오랜만에 먹는 옛날 된장이 나오는데 밥을 말은 후 쉴새 없는 가위질로 각종 재료를 잘라주니 탄수화물에서 나오는 녹말과 어우러져 달디단 밥안주인 된장죽이 완성된다. 이 된장죽은 셀프서비스니 유의할 것.


<수육의 새로운 발견, 이남장>

술을 좋아하기에 해장으로 탕류를 찾곤 하는데, 이제 나이가 좀 들어서인지 자극적인 국물보다는 맑거나 슴슴한 탕으로 선회한지가 좀 된 거 같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남장은 서울에 여러 점포가 있고 심플한 메뉴로 수십 년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 설렁탕은 종종 먹곤 했는데 너무 맑지도 그렇다고 너무 진하지도 않은 이 집만의 스타일은 해장에 완벽하다.

어느 주말, 궁금해하던 수육을 처음 주문해보았는데 역시 새로운 발견이었다. 수육과 우족을 반반 섞어 시킬 수 있는데, 순 살코기보다 훨씬 애정하는 머릿고기 위주의 부위들과 우설, 그리고 쫀득한 우족이 푸짐하게 제공되어 해장 겸 방문한 일정이 술로 인해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두 명이 방문하여 수육과 설렁탕을 시키니 완벽한 안주가 준비되었는데 고소한 국물 한입에 소주 한 잔, 부드러운 우설과 머릿고기에 또 한 잔, 간장을 푹 찍은 우설에 정신 못 차리고 연신 짠을 하게 되더라. 이 맛있는 수육을 이제야 발견했다니 자칭 대식가로서 자책까지 하게 되더라. 이제부터 강남에서 수육은 이남장에서만 먹겠다 다짐하고 오전부터 대리기사님의 도움으로 겨우 집에 와서 긴 낮잠을 청했다.


<검증된 셰프의 새로운 해석, 이타닉 가든>

파인다이닝 소식 하나를 전해볼까 한다. 뉴욕의 미슐랭 3 스타이자 가장 예약이 어려운 Chef’s Table at Brooklyn Fare 출신 셰프님이 조선 팰리스에 합류하여 오픈했던 이타닉가든의 수장이 바뀌었다. 한식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굉장히 다양한 시도를 했던 곳인데,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것인지 나는 그 복잡함을 즐기기가 어려웠었다. 분명 맛은 있는데 이것을 한식이라고 규정하기엔 큰 갭이 있었고 너무 많은 인풋이 있던 것이 아닌지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이미 검증된 라망 시크레의 손종원 셰프께서 부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출동을 했다. 손 셰프 역시 뉴욕과 한국에서 프렌치로 정통한 분이지만, 이분의 이타닉 가든은 어떻게 풀어갈지. 한식이라는 고정관념이 깊이 박혀있는 나를 비롯한 일반 대중에게 새롭게 어필하기는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번에 방문해본 이타닉 가든은 이곳만의 장르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식자재와 조리법을 충분이 이용하고 셰프님의 다양한 스킬들이 더해져 손종원의 이타닉 가든이 완성된 것이다.


정말 처음 먹어보는 새로운 요리들이 쉽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이곳만의 퀴진이 뾰족하게 또렷해진 느낌이다. 그리고 주류 페어링도 남다르다. 흔히 보는 향이 강하거나 도수가 높은 증류주뿐 아니라 처음 보는 청주류와 한국형 진도 너무 재미있고 맛있더라. 리뉴얼 초기의 음식임에도 이 정도의 완성도라면 이곳의 진화는 눈여겨볼 만하다.



<대대적인 리뉴얼과 함께 문을 연 호빈>

최근 대대적인 리뉴얼을 마치고 앰버서더 풀만 호텔이 문을 열었다. 우리가 잘 아는 대기업의 특급호텔에 가려 뚜렷한 외식업 성과가 없는 그런 호텔이 리뉴얼과 함께 완전 새로워졌다. 조선호텔 출신의 총주방장을 영입하여 뷔페, 중식, 테판야키, 그로서리 등을 획기적으로 새로 런칭했는데 좋은 기회가 있어서 중식당을 방문 할 수 있었다.

몇 해 전 신라호텔의 팔선을 떠난 후덕죽 셰프님을 이곳 호빈의 총괄로 모셔 오픈을 했는데 역시는 역시더라. 팔선만큼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충분히 고급스러운 공간에서 충분히 수준 높은 요리와 서비스를 즐길 수 있고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깔끔한 전체부터, 샥스핀, 랍스터와 전복까지 진귀한 산해진미를 후셰프님 요리로 만나는 것은 정말이지 영광인데 가격마저 좋으니 이곳의 예약전쟁은 안 봐도 뻔하다.

요리만 힘준 것이 아니고 식사마저도 올해의 짜장과 짬뽕이었으니 가까운 곳에서 팔선을 위협할 만한 곳이 생긴 것이다. 어버이날 식사로 예약하려 했으나 역시 실력자의 소문은 발보다 빠른 법. 당연히 만석이라 갈 곳을 잃은 나는 어디로 부모님을 모실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은 레스토랑에서도 일맥상통한다. 인스타그래머블하게 예쁘게 치장한 인테리어와 요리는 너무 많지만 역시 두 번은 안 가게 되는 곳이 많은 반면, 묵묵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온 실력자들의 공간은 언제 가도 참 정겹고 편안하다. 따지고 보면 그 많은 식당 중에 단골집을 만든다는 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많은 단골을 확보한 오래된 식당을 선호한다. 남들 다 아는데 나만 몰랐던 곳을 가는 것도 좋고, 검증된 실력자의 새로운 공간도 환영한다. 그간 열악했던 외식 시장이 급 발전을 하고 있는 이 시기에 또 어떤 보물을 발견할지 오늘도 기대해본다. 



필자 소개  주 당 클 럽

2004년부터 블로그 활동을 시작하여 1세대 파워 블로거라는 명칭을 얻은 미식가이며 하루에 2회, 1년에 700회 이상 외식을 하는 대식가이기도 하다.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비밀로 하고 있지만, 그의 글을 유심히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짐작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