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검색을 이용해보세요
1. 검색 조건을 조합해서 내가 원하는 맛집을 정확히 찾을 수 있는 멀티검색 기능
2. 내 주변의 블루리본 맛집을 빠르게 찾아주는 주변 맛집 검색 기능
3. 매년 발행되는 블루리본 최신판에 수록된 맛집만 검색할 수 있는 기능
음식과 맛, 여행에 대한 이야기
어느덧 코로나 시국에 접어든지 3년째다. 3년 동안 해외에 나가지 못한 많은 이들이 국내 다이닝신으로 몰리면서 인기 레스토랑들은 한두 달치 예약이 끝나 있기도 하다. 국내 관광지에 많은 인파가 몰리고 어디든 조금만 인스타그래머블한 곳은 줄을 길게 선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 여행은 해외 여행에 비해 시시하다는 여론이 많다. 어디를 가도 비슷한 경치에, 시설에 비해 비싼 숙소에, 비싸고 불친절한 음식점 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물론 그런 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5년 전 경남 바닷가 마을로 내려와 전라도와 경상도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느낀 바로는 어떻게 여행 하느냐에 따라 국내에도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즐길 것도 많다는 것이다. 이번 여름부터는 식도락으로 테마를 정하고 남쪽나라로 1박 2일 여행을 함께 떠나보자.
8월은 덥고 습하고 지친다. 어딜 가든 피서객들로 미어 터진다. 부산이나 강원도의 해수욕장은 백사장을 가득 메운 파라솔과 사람들로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럴 때는 차라리 지방의 소도시로 떠나는 게 상책이다. 8월은 목포로 향해보자. 서울,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 가장 멀고, 경치도 사뭇 달라서 상당히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끼며 휴가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목포 해상케이블카에서 본 풍경
<첫째 날 점심>
목포는 먹거리가 무척이나 풍부한 지역이다. 해산물만 꼽아도 세발낙지, 갈치, 홍어, 민어, 준치, 밴댕이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고 이것들로 만든 음식까지 설명하려면 책 한 권도 모자랄 것이다. 목포가 처음이라면 장터식당이나 초원음식점에서 매콤달콤한 꽃게무침이나 게살만 발라내어 양념에 무쳐낸 꽃게살 비빔밥도 좋겠다. 꽃게무침은 간장게장과 마찬가지로 제철에 잡아 급랭한 꽃게를 사용하여 철에 상관없이 먹을 수 있지만, 꽃게무침에 자세한 이야기는 꽃게 철에 따로 다뤄보도록 하자.
장터식당의 꽃게살무침과 꽃게탕
전라도의 진한 참맛을 느끼고 싶다면 금메달 식당에서 홍어 코스도 좋지만 이역시도 날씨가 좀 쌀쌀해져야 제격이다. 해산물이 싫다면 떡갈비는 어떨까? 목포에는 맛없는 음식이 없다. 성식당과 영암떡갈비의 떡갈비가 유명한데 다지지 않고 저며낸 뒤 연탄불에 터프하게 구워내는데 불 향과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영암떡갈비의 떡갈비
먹을 것들이 너무 많지만 꼭 여름이 아니어도 먹을 수 있거나 여름이 제철이 아닌 음식들을 제하고 나면 우리가 8월에 목포에서 먹어야 할 음식은 바로 민어다.
민어(民魚)는 농어목 민어과 민어속의 민어(Miichthys miiuy)를 일컫는 생선으로, 백성의 생선이라는 뜻과는 다르게 옛날부터 귀한 생선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석수어(石,首魚면 혹은 면어(鮸魚) 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일반에 민어(民魚)로 바뀌어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민어는 따뜻한 바닷물을 좋아하는 난류성 어류로, 겨울에는 제주 먼바다에 있다가 산란기 전인 6월쯤 서해안으로 올라온다. 예전에는 북쪽으로도 꽤 올라와 서해안 전역에서 잡혔고 인천 앞바다 역시 주요 민어산지라 서울에서도 많이 먹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전남 신안 쪽에서 잡히고 있다. 산란 전 기름기가 올라 회로 먹어도 맛있는 때가 바로 6~8월이다. 수컷은 제철 내내 맛을 유지하지만 암컷은 8월~9월 이후에는 산란을 하고 맛이 떨어지는 탓에 민어의 제철을 6~7월로 조금 더 엄격하게 잡는 사람들도 있다.
민어는 수심이 깊은 물에서 건져 올려지면 수압 차를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죽어버리며 운 좋게 살아서 수산시장에 오는 것들도 배를 뒤집고 있다. 그렇다고 신선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오히려 이런 아이들이 진짜다. 팔팔하게 헤엄치고 있는 것들은 홍민어(표준명 점성어)나 양식민어(표준명 큰민어)인데 이것들을 민어로 속여 팔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민어 전문점에서 먹을 것이니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목포역 근처 구시가지에는 <민어의 거리>가 있다. 이곳에 1969년 문을 연 영란횟집을 비롯해 유림횟집, 중앙횟집, 만호유달횟집, 포도원횟집 등 유명한 민어집들이 모여있다. 그 중 원조라고 하는 영란횟집을 가보자. 실내는 최근 리모델링을 해서 아주 쾌적하고 대기실까지 구비되어 있는데다 바로 골목건너편에 전용주차장까지 마련되어 있어 움직이기도 편하다. 이전에는 모든 메뉴를 단품으로 주문해야 해서 서너 명 이상 인원이 되지 않으면 다양하게 먹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두 명만 가도 민어회, 민어전, 민어회무침, 매운탕으로 민어코스요리를 즐길 수 있다.
회는 며칠 정도 숙성시킨 선어회라고 하는데 아주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우며 기름기가 고소하다. 킬로 수가 꽤 나가는 민어를 사용해서 부위별로 맛이 확실히 다르다. 귀한 지느러미 살이 어딘가 한 점쯤 숨겨져 있으니 이걸 찾아내는 사람은 횡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부위에 비해 졸깃하면서도 씹을수록 기름기가 쭉쭉 뿜어져 나오는 것이 두 배는 고소하다.
영란식당의 민어회
곁다리로 민어 부레와 껍질이 나오는데 회와는 또 다른 별미다. 부레는 꼬들꼬들한 식감이, 껍질은 쫀득쫀득한 식감이 재미있다. 회는 간장에 찍어먹는 것이 고유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지만, 막걸리 식초를 넣어 독특한 풍미가 있는 새콤달콤한 초장에 찍어먹어도 별미다.
회를 먹고 있다 보면 뜨끈하게 부친 전이 나온다. 살을 두툼하게 썰어 부쳐내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다. 이 전만큼은 광주에서 바로 옆에서 부쳐주는 육전 전문점보다 훌륭했다. 회무침은 새콤달콤한 양념 맛으로 먹는다. 민어의 고소함이 더해지기는 하지만, 특별히 다른 회무침보다 더 맛있지는 않다. 그저 맛있는 회무침이다.
마지막으로 식사는 매운탕이 나오는데 미리 요청하면 지리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민어머리를 넣고 고아내어 얼큰하면서도 아주 구수하다. 볼살을 발라먹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영란식당의 민어코스요리
영란식당의 민어부레
영란식당의 민어탕
식사를 맛있게 마쳤으면 목포 시내를 조금 둘러보도록 하자. 목포는 예전 일제 강점기 수탈의 아픔과 5.18 민주화 운동의 발자취가 진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발전이 덜 되었다면 덜 되었고, 예전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면 보존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일본식 건축 양식의 적산 가옥, 70, 80년대 스타일의 타일벽돌 건물과 금색, 은색의 가게 이름이 큼지막하게 그대로 붙어 있는 간판 등 도시 전체가 응답하라 199x 촬영장 같은 느낌이다.
드라마 호텔 델루나를 재미있게 봤다면 촬영지였던 목포근대역사 박물관은 꼭 가보자. 또 한군데 꼭 들르기를 추천하는 곳이 있다면 조금 엉뚱하게도 목포자연사 박물관이다. 박물관 입구에 어린이 공원에서나 볼 법한 만화 풍의 판다, 기린 조형물 들이 있어 심리적 저항감을 높이지만, 안쪽으로 들어서면 본격적인 자연사 박물관이 펼쳐진다.
목포자연사 박물관은 1983년 목포향토문화관으로 개관하여 1998년 목포자연사문화박물관으로 바뀌었다가 2021년 리뉴얼 오픈 하였는데 모형들만 몇 개 전시되어 있는 타 지자체의 박물관과 다르게 각종 광물, 화석, 특히 천연기념물 535호로 지정된 육식공룡알둥지화석 원본, 곤충과 동식물 표본 등이 자세한 설명과 만져보거나 VR 체험할 수 있도록 잘 꾸며져 있다.
목포 자연사박물관
<첫째 날 저녁>
저녁으로는 국내 여행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다소 생소한 경험을 해보자. 바로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이다. 목포까지 와서 무슨 파인 다이닝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지역의 특산물을 사용한 창작 요리를 맛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어느 지방 소도시를 가든 탄탄한 실력의 비스트로 급 이상의 식당이 하나씩은 있어서 낮에는 향토음식을 즐기며 지역 명소를 관광하고 저녁에는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며 지역 특산물을 사용한 멋진 요리로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경험한 이후부터 국내에도 이런 여행을 바라왔다. 그런데, 목포에서도 그걸 할 수 있다. 바로 프렌치 레스토랑 비스트로 시에(Bistro Cie)다.
시에의 정호중 셰프는 서울의 여러 유명 레스토랑에서 근무하고 망원동에 비스트로 마림을 오픈하여 인기를 얻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영업이 어려워지며 고향인 목포로 내려왔다고 한다. 정 셰프는 목포에서 시에를 열어 향토 음식의 재해석,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 등을 실천하며 지역 미식 발전에 힘쓰고 있다.
비스트로 시에의 정호중 셰프
시에의 첫 요리는 밴댕이 카르파치오다. 목포에서 송어 혹은 밴댕이라고 부르는 이 생선의 표준명은 반지(Setipinna tenuifilis)다. 청어목 멸치과의 생선으로, 목포의 대표적인 특산물이다. 회로도 먹고 젓갈로 담가먹기도 한다.
밴댕이카르파치오
시에에서는 이 밴댕이를 필레를 뜨고 뼈를 일일이 발라내어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과 딜 오일에 버무려 카르파치오를 만들었다. 계절에 따라서는 유자 크림을 섞기도 하고 그냥 레몬 제스트로만 처리하기도 한다. 아주 짭조름하고 고소하면서도 허브의 향긋함이 그냥 회로 먹을 때와는 또 다른 청량한 느낌이다. 계절에 따라 병어가 더 좋을 때면 병어로 내기도 한다.
다음으로 주목할 만한 요리는 한우와 뻘낙지 타르타르다. 목포의 유명한 낙지탕탕이와 육회의 결합인데 이 둘을 함께 내는 집도 있다. 시에에서는 한우와 낙지를 적절히 배합한 뒤 소금에 절인 계란 노른자와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설탕을 입힌 헤이즐넛을 넣어 고소함과 이국적인 향을 더 했다. 육회나 낙지탕탕이의 익숙한 참기름 맛이 아닌, 감칠맛이 진하면서도 나무 향이 은은히 풍기는 것이 아주 근사하고 어떤 와인과도 잘 어울린다.
한우낙지타르타르
이후로도 정 셰프 부모님의 영암 농장에서 재배한 채소로 만든 라타투유, 전남 지역 협동조합의 한우 스테이크, 정 셰프 할머님이 직접 기른 도라지로 만든 도라지 정과 타르트나 직접 담근 매실청을 이용한 디저트 등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색깔을 담뿍 지닌 음식들로 채워져 있다.
생선요리
스테이크
파인 다이닝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목포에서 맛보는 세계적인 트렌드에 발 맞추는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요리에 가슴이 뭉클할 정도였다. 식사를 마치면 평화광장에 잠깐 들르도록 하자. 저녁 8시와 8시 반에 하는 화려한 바다 분수 쇼는 목포의 밤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둘째 날 아침>
비스트로 시에에서 진한 와인 앤 다인을 즐겼다면 다음날 아침은 아마도 해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목포에도 유명한 해장국집들과 설렁탕집들이 있지만 조금 더 특별한 느낌을 주는 조선쫄복탕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것은 어떨까.
복어국은 주로 통영 일대를 포함한 경남 바닷가 지역에 많이 먹는 음식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조선쫄복탕의 복탕은 조금 더 특별한데, 졸복을 으깨어지도록 푸욱 고아서 어죽처럼 만든 것이 특징이다. 걸쭉하고 구수한 졸복탕에 부추무침으로 간을 맞추고 식초를 조금만 넣어주면 감칠맛이 선명하게 살아난다. 어죽처럼 으깨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조금씩 덩어리로 씹히는 복어 살의 식감도 좋다.
맛의 고장 전라도 목포답게 국밥 하나를 먹는데도 반찬이 여덟 가지나 깔리는데 하나하나 깔끔하면서도 맛이 진하고 맛있다. 특히 직접 기른 고추를 갈치속젓에 무쳐 놓은 고추장아찌는 짜릿하게 짭조름하고 새콤하면서도 진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마음에 드는 반찬은 셀프로 몇 번이든 리필해 먹을 수 있어 더 좋다.
조선 쫄복탕의 졸복탕
<돌아오는 길>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는 조선쫄복탕 인근에 있는 목포종합수산시장을 둘러보도록 하자. 남해와 서해 바다에서 나는 싱싱한 제철 해산물들이 노량진 수산시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특히 골목이 아주 잘 되어 있으니 구경해보자. 흔히 접하는 명란젓, 창란젓, 오징어젓부터 시작해 송어젓(밴댕이젓), 황석어젓, 갈치젓 등 다른 곳에서 쉽게 구경하기 어려운 젓갈도 많다. 꼭 구매하지 않더라도 커다란 독에 담겨있는 젓갈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색다른 경험이다.
목포종합수산시장의 풍경
돌아가기 전에 해상케이블카를 타고 마지막으로 목포의 모습을 눈에 담고 돌아가자. 아마 이번 여행은 정말 알차게 맛있었다는 만족감으로 충만할 것이다.
필자 소개 류 크
17년차에 접어드는 1세대 푸드 블로거로, 전국의 파인 다이닝을 섭렵하였다. 현재는 경남 바닷가 마을에 거주하며 남쪽나라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