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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맛, 여행에 대한 이야기
-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진짜 맛있는 남도의 리얼 떡갈비집들
10월은 떡갈비에 대한 이야기다.
떡갈비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음식이다. 교외로 나가면 한정식집에서 나오는 떡갈비, 시장에서 간식거리로 파는 떡을 꽂은 떡갈비, 학교 급식에서 나오는 제품 떡갈비까지. 의식하지 않더라도 제법 쉽게 자주 접한다. 사람마다 가지는 떡갈비에 대한 기억과 이미지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아마 대부분 떡갈비는 고기와 채소를 곱게 다져서 둥글넙적하게 뭉쳐 놓은, 간장 양념한 함박 스테이크 정도일 것이다. 지금처럼 맛있는 고기를 흔히 접할 수 없던 20~30년 전에는 고급스러운 요리였지만 지금은 굳이 찾아 먹지는 않는, 조금은 식상한 고기 반찬. 그것이 지금 떡갈비가 가지고 있는 위상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 편견을 깨기 위해 준비했다. 동그랑땡인지 함박 스테이크인지 애매한 그런 떡갈비 말고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진짜 맛있는 남도의 리얼 떡갈비집들.
들어가기 앞서 떡갈비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우리가 먹는 떡갈비는 도대체 언제 생긴 음식일까? 떡갈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는데 가장 널리 홍보되고 있는 것이 한식진흥원 측에서 주장하는 궁중 음식 혹은 반가 음식 기원설이다. 원래 떡갈비는 임금님이 갈비를 뜯는 모습이 흉하니, 먹기 편하게 갈비를 다져서 양념하여 구워먹던 음식이었는데 1425년 노송당 송희경이 담양으로 퇴거해 살면서 궁중의 별미를 전해 담양 떡갈비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궁이 와해되면서 궁에서 일하던 나인들에 의해 서울과 경기 지역에 전해지며 경기 스타일의 떡갈비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인지 의심이 간다. 우리가 먹는 떡갈비 스타일은 이보다 근래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옛날에 다진 고기를 양념해서 먹는 음식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과 우리가 지금 먹는 떡갈비와의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게 무리라는 이야기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는 떡갈비를 전라남도 담양, 해남, 강진 등에서 개발된 향토 음식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 음식으로 보기 어렵다고 못박고 있다. 푸드 컬럼니스트 황광해 선생도 상업적인 성공이 담양에서 시작했을 뿐, 흔히 먹던 음식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일단 떡갈비라는 단어 자체도 1960~70년대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떡갈비는 만드는 방법이 떡을 치듯 치대어 만들어 떡갈비라는 이야기도 하고 인절미 같은 떡 모양으로 만들었다 해서 떡갈비라는 이야기도 있다.
같은 남도라 해도 지역별로 약간씩 달라지는 떡갈비에 대해 살펴보자.
1. 담양 떡갈비
신식당
떡갈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담양의 신식당이다. 창업자 고 남광주 할머니가 마을 잔치에 케이터링 형식으로 요리를 만들다 1932년부터 식당의 형태로 손님을 받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 후에 식당을 물려받은 며느리 고 신금례 할머니가 신식당이라 이름을 짓고 본격적인 떡갈비 전문점으로 운영을 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현재 4대째 며느리에서 며느리로 이어지는, 명실공히 가장 오래된 떡갈비 전문점이다.
다만 식당 측에서 주장하는 떡갈비라는 명칭과 관련하여 3대인 이화자 할머니때 손님들이 갈비 모양이 마치 떡 같다고 해서 떡갈비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그 이전부터 떡갈비라고 불렸다는 주장과 상반되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신식당의 떡갈비는 한우를 사용하여 갈빗대에 갈비살을 일부 남기고 다져내는데 어느 정도 씹히는 느낌이 있게 거칠게 다져서 고기에 두툼하게 다시 붙여놓는다. 채소 등 다른 재료는 들어가지 않고 양념도 진하지 않아서 약간의 간장 짭조름한 느낌이 더해진 갈비 스테이크 같은 느낌이다. 곁들이는 술도 전통주보다는 와인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맛이다. 달콤한 떡갈비에 익숙하다면 좀 심심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음미하다 보면 고기 자체의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잇다. 반찬이 가짓수는 많지 않지만, 준수하고 식사에 곁들이는 곰탕도 시원하니 괜찮다.
신식당
덕인갈비
신식당과 함께 담양 떡갈비를 대표하는 또 다른 명가가 있으니 바로 덕인갈비다. 1963년 장막래할머니가 갈빗집으로 개업해서 70년대부터 떡갈비를 본격적으로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우 암소 갈빗대에 갈빗살을 제법 두툼하게 남기고 그 주변으로 갈빗살과 안창살을 씹히는 느낌이 남아있도록 다져서 둘러 붙인다. 초벌구이를 해서 무쇠 팬에 담겨 나오는데 겉이 갈색으로 눌러 붙게 더 익혀서 먹으면 맛있다.
신식당보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달콤하고 짭조름한 양념갈비 맛에 더 가까운데 너무 연하지도 너무 진하지도 않고 밸런스가 무척 훌륭하다. 남도스러운 반찬은 아니지만 곁들일 찬도 열대여섯 가지나 나와 입이 심심하지 않다. 서비스로 나오는 선짓국도, 식사로 주문해 먹을 수 있는 추어탕도 맛이 빠지지 않는다. 박할머니의 아들이 신축건물에 개업한 덕인관보다는 본점인 덕인갈비를 추천한다.
덕인갈비
2. 광주 송정 떡갈비
송정떡갈비는 1950년대 최처자 할머니가 5일장 시장에서 떡갈비를 팔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광주의 송정이 나주, 영광, 함평 등지에서 오는 물건들이 모이는 길목이라 우시장도 크게 형성되었다고 한다. 송정식 떡갈비는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져서 양념과 함께 치대서 얇고 네모나게 만든다. 바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형태의 떡갈비다. 급식으로, 식당의 밥 반찬으로, 냉동제품으로 가장 많이 접하는 바로 그 스타일이다. 지금의 시점으로야 무난하고 익숙한 음식이겠지만, 이 음식이 탄생해서 널리 알려지기까지는 맛있고 푸짐하고 먹기 편한 효자 같은 고기 반찬이었을 것이다. 지금 송정의 떡갈비 골목의 떡갈비 집들에서는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섞는 형태의 떡갈비도 판매하지만, 대부분은 한우떡갈비를 주력으로 한다. 송정떡갈비, 화정떡갈비, 이조떡갈비등이 유명하다. 송정 떡갈비는 굳이 찾아가서 먹을 필요까지는 없을 듯 하고, 광주에 간다면 한번쯤 들려서 맛볼 만하다.
송정떡갈비1호점
3. 군산 떡갈비
완주옥
군산에도 특유의 독특한 떡갈비 스타일이 있다. 군산의 떡갈비 역사는 1940년대 고급 요정에서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실질적인 기록은 1976년 등록된 진할머니의 완주옥이다. 진할머니의 고향이 완주여서 완주옥으로 이름 붙였다 한다. 진할머니의 떡갈비는 다른 곳들의 떡갈비처럼 고기를 뭉쳐놓은 것이 아니라 접시에 펼쳐놓은 형태였다고 하며, 현재도 군산의 떡갈비집들은 대부분 이런 형태를 하고 있다. 현재의 완주옥은 오너가 몇 차례 바뀌어 정통성을 잇고 있는 원조집이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군산 떡갈비의 스타일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담양의 떡갈비들이 고기를 입자 있게 다져서 갈빗대에 붙인 느낌이라면, 완주옥의 떡갈비는 얇게 저며 대충 다진 고기를 붙여 놓은 것 같은 모양새로 씹는 맛이 아주 좋다. 고기는 한우를 사용한다고 하고 저민 마늘을 구워 올린다. 양념은 이 지면에 소개한 어느 떡갈빗집보다 자극적이면서 달콤하고 짭조름한데 연탄에 구워내 부분부분 양념이 바삭 하게 눌러 붙은 부분이 있어 풍미가 일품이다. 여기에 배추 1/4쪽을 호쾌하게 썰어 곁들여낸 시원한 백김치를 곁들이면 궁합이 아주 좋다.
군산의 유명 떡갈비는 대부분 완주옥에서 파생된 완주옥 계열인데, 2대였던 홍할머니가 외손주를 도와 개업을 한 것으로 알려진 우리떡갈비, 완주옥에서 오랫동안 일하던 직원이 독립하여 94년 개업한 내갈비, 91년 개업한 진갈비 등이 있다. 전반적으로 완주옥과 비슷하게 달콤한 맛에 마늘을 올린 떡갈비다.
완주옥
4. 목포 떡갈비
성식당
1961년 개업해 현재까지 영업하고 있는 목포의 노포 중 하나다. 육우의 갈빗살과 등심을 칼로 덩어리지게 다져 갈빗대에 붙인 후 석쇠에 끼워 연탄에 구워낸다. 거칠게 구워 군데군데 까뭇까뭇 그을린 부분이 있어 풍미를 더 한다. 손바닥만한 떡갈비 한 두 개가 1인분인 다른 식당들과는 달리 한 접시 한 가득 쌓아 푸짐하게 담아 나온다. 매스컴에도 여러 번 소개되어 유명하고 인기 있는 식당이지만, 예약제로 운영하여 무리하게 많은 손님을 받지 않아 쾌적하게 식사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성식당
영암식당
목포의 또 다른 노포 떡갈비집으로, 1965년 개업해 집안의 며느리들이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1대인 백순희 할머니의 고향이 영암이라 영암식당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영암식당도 성식당과 마찬가지로 국내산 육우를 사용하여 연탄불에 굽는다. 갈빗대에 고기를 두툼하게 남기고, 다른 부위고기를 아주 거칠게 다져 이어 붙였다. 떡갈비라는 느낌보다는 갈비구이를 좀 먹기 좋게 손질해놨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양념 자체는 크게 달지 않고 짭조름한 편인데, 꽤 과감하게 구워 태우듯 눌러 붙은 양념 덕분에 감칠맛도 굉장하다. 조금 질긴듯한 느낌마저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영암식당의 또 다른 매력은 무척이나 훌륭한 반찬이다. 음식이 나오기 전 예닐곱 가지의 반찬이 나오고 음식이 나오며 또 다른 예닐곱 가지의 반찬이 추가되는데 하나하나 남도의 개미가 넘친다. 특히 김치와 장아찌가 아주 맛있다.
영암식당
5. 그 외 떡갈비들
백학정
정읍에 위치한 백학정은 1978년 개업하여 4대째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다. 떡갈비는 한우 암소를 사용해 적당히 씹히는 맛이 있을 정도로 다져서 둥글넓적한 모양으로 만든다. 양념은 미리 재워놓지 않고 참숯에 구울 때 바른다고 한다. 뜨겁게 달군 돌판 위에서 추가로 조금 더 구워서 먹는데, 단맛이나 짠맛이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돌판에 눌러 붙으며 양념 맛이 진해지는 부분과 조금 연한 부분의 차이가 재미있다. 떡갈비 백반이라고 내지만 한정식이라 해도 좋을 만큼 반찬이 다양하고 맛도 훌륭하다. 특히 김치와 장아찌류의 맛이 훌륭하다.
백학정
천일식당
1924년 개업한 천일식당은 해남의 아이코닉한 한정식집이다. 빈 방에 자리잡고 기다리고 있으면 스무 가지 정 정도의 반찬이 한 상 가득 차려진 상을 내어오는 전형적인 남도의 한정식집이다. 그런데 이곳은 떡갈비로 상당히 유명하다. 메뉴도 “떡갈비정식”과 “불고기정식” 두 가지다. 떡갈비 정식을 주문하면 큰 접시에 넓적하게 구워진 떡갈비가 나오는데 거칠게 다져 씹는 맛이 있는 형태다. 양념도 분명하게 느껴지지만 너무 달지는 않고 불 향도 은은하게 난다. 불고기는 전남 지역에서 흔히 하는 바싹 불고기 형식으로 두 개를 함께 맛보기를 추천한다. 최근 관광객들의 비중이 많아지며 정통 남도음식보다는 샐러드나 잡채, 계란찜 같은 평범한 음식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김치와 젓갈류가 무척 맛있는 집이다.
천일식당
금성가든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전남의 독특한 음식 중 하나가 흑염소 떡갈비다. 전문점도 꽤 많아 지역적 특색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순천에 위치한 금성가든은 이 흑염소 떡갈비집 중 이름을 날리는 곳이다. 다양한 요리를 내는 다른 흑염소 전문점들과는 다르게 흑염소 떡갈비와 닭장만 전문으로 한다. 흑염소 고기의 여러 부위를 뭉쳐 경단처럼 만든 떡갈비를 직접 만든 참나무 숯에 직접 구워 먹는데 신선한 고기를 사용하여 소나 돼지 이외의 다른 동물의 고기라는 느낌은 들지만, 역한 풍미나 잡내는 전혀 없다. 달지 않은 적당한 양념에 숯불 향과 색다른 풍미가 입맛을 자극한다. 3년 묵은지, 파김치, 갓김치, 총각김치, 감장아찌, 무장아찌, 매실장아찌등 김치류와 장아찌류가 무척 훌륭해서 같이 곁들이기 좋다. 식사를 주문하면 나오는 흑염소 뼈를 고아 만든 곰탕도 별미다.
금성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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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류 크
17년차에 접어드는 1세대 푸드 블로거로, 전국의 파인 다이닝을 섭렵하였다. 현재는 경남 바닷가 마을에 거주하며 남쪽 나라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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