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리본 매거진

음식과 맛, 여행에 대한 이야기

김혜준의 동네 한바퀴 Ep.01 약수동

2024.02.07 13:09:49

익숙한 어느 골목길, 자주 발걸음이 옮겨지는 나만의 맛집. 혼자 가도, 여럿이 시끌벅적 몰려가도 늘 즐거운 나의 단골집들을 가볍게 이어갈 수 있는 루트로 소개하는 ‘동네 한바퀴’를 시작합니다. 

그 첫 에피소드는 뜨끈한 아재력 급상승하는 쿰쿰한 순댓국과 소주 한잔, 주머니 속 갓 구워 낸 호두과자 한 알과 씁쓰레한 에스프레소 한잔이 가능한 약수동 그 길로 함께 걸어가 볼까요?


해남순대국

예로부터 물 맑은 약수터가 몇 곳 몰려 있어 약수동이라 칭해졌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재개발로 인해 아파트 단지들이 옹기종기 몰려 있는 지하철 환승역으로 유명하지만요. 장충동, 을지로로 또는 반대 방향인 강남으로 진입하기 좋은 최상의 허브라 할 수 있는 이곳의 작고 작은 시장터는 알찹니다. 

오랜 역사를 이어 영업을 해오고 있는 순댓국집도, 지글지글 달콤하게 불향 은은한 돼지갈빗집들도 그리고 지금은 사라져 버린 유명한 떡집들도 모두 이 약수시장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명맥만을 유지하는 작은 상점들과 청과상들이 대부분이 되었지만, 아직 싸늘한 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발걸음이 향하는 원조 해남순대국은 늘 뜨겁고 푸근합니다. 


혼자 오면 직원분의 안내로 자연스레 합석할 수밖에 없는 이곳의 인기는 여전합니다. 인기로 치자면 맞은편의 약수순대국이 더 유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국물이 가진 스타일로 취향을 타다 보니 저는 자연스레 맑지만 약간 돼지 누린내 쿰쿰한 매력이 있는 해남순대국을 더 자주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레이디는 당연히 순댓국 특을 주문합니다. 인원이 늘어나면 수육 소자를 추가해도 좋지만 특 한 그릇에 기본으로 나오는 촉촉하고 크리미한 ‘간’만 있어도 소주 한 병은 순식간에 사라지니까요. 걱정 없는 구성입니다. 순댓국은 머리 고기와 내장 그리고 당면 찰순대가 몇 개 들어 있습니다. 특 정도면 꽤 풍성한 편이라 함께 나오는 공깃밥을 따로 적셔 먹으며 소주 반주하기에 완벽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약수 순댓국보다 해남을 찾게 되는 강한 포인트로 ‘간’을 말할 수 있습니다. 간 몇 조각이 무슨 대수냐 하시겠지만 요게 순댓국이 등장하기 전까지 깍두기와 함께 얼마나 좋은 소주 친구가 되어 주는지, 기대 이상의 맛이 되어 줍니다. 수육의 구성도 알찹니다. 간과 항정살, 혀, 오소리감투와 순대, 제일 좋아하는 볼살과 턱살까지. 

마음먹고 돼지 부속에 소주 마시며 허심탄회하게 별 의미 없는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이와 마주 앉아 먹기 참 좋은 맛입니다. 하지만 평소처럼 혼자 올 때는 깔끔하게 순댓국 특 한 그릇이어도 충분합니다. 본식과 약간의 소주로 기분 좋은 포만감이 들었다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을 위해 얼른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어 내 봅시다.

아직 우리가 가야 할 먹을 길이 멀기 때문이죠.


메뉴 순댓국 (대 1만원, 특 1만2천원), 술국(2만원), 수육(2만5천원, 중 2만8천원, 대3만원)

전화 02-2252-1526

주소 서울시 중구 다산로8길 8

영업시간 10:00-21:00 | 토요일 휴무


호두까기 호두과자 약수점

위치상으로 눈앞에 두고 지나치기 쉬운 곳에 있는 호두까기 호두과자는 바로 해남순대국 옆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진짜 바로 옆. 5걸음 안에 이동이 가능할 정도의 그 가까움 말이죠. 호두과자를 굳이 사 먹는 나이나 취향은 아닌데 무슨 일인가 싶습니다. 이곳의 호두과자와 센베이를 약수동에 사시는 모 셰프님께서 사다 주신 적이 있습니다. 

성시경이 극찬한 맞은편 분식집의 꽈배기와 만두, 찹쌀 도넛과 함께 말이죠. 참, 이 분식집의 만두는 방울 모양인데 꼭 차가운 상태로 10알씩 두어 묶음을 사서 냉동실에 넣어두세요. 잊고 있다가 데워 먹는 맛이 정말 좋답니다. 

다시 호두과자 이야기로 돌아와 봅시다. 한 알의 호두과자가 뭐 그리 대단해서 일부러 들어와서 먹을까 싶지만, 한 번 맛본 그 맛이 심상치 않아 일부러 찾아와 보게 되었던 곳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편에 꽂혀 있는 일본 구움 과자 책들에서 만드시는 사장님의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끼고 맙니다. 거기에 캘리포니아산 호두 반태가 하나에 그대로 들어갑니다. 분태 조각이 쩨쩨하게 들어간 그런 맛이 아니고요. 

알알이 21개가 들어간 한 박스를 가장 많이 사 가시는 듯한데 알고 보면 점점 그 박스의 수량이 늘어나게 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저도 늘 가면 3박스를 들고 와 냉동실 한편에 잘 챙겨 넣어 두거든요. 살짝 실온에서 15분만 두어도 먹기 좋은 상태가 될 만큼 속에 팥앙금이 가득 차 있습니다. 

얼마나 유명한지 스마트 스토어팜도 운영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전 늘 순댓국 한 그릇 먹고 바로 들러 하나씩 손에 쥐어 주시는 따끈한 온기가 있는 호두과자를 한 알 주머니에 넣는 재미로 일부러 매장에 들르곤 합니다. 물론 바로 먹으면 안 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우리에겐 아직 남아있는 맛 길이 있거든요.


메뉴 1박스(21알 7천원), 3박스(2만원)

전화 02-2234-5002

주소 서울시 중구 신당동 366-9

영업시간 09:00-21:00| 일요일 휴무


리사르 커피 약수점 본점

아직 주머니 속 호두과자의 온기가 식기 전에 우리는 리사르로 향합니다. 바로 옆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건물 안쪽에 위치한 에스프레소 스탠딩바를 만나게 됩니다. 재미있게도 집 근처 청담점이 더 가깝지만 약수점 본점만 주야장천 방문하게 되는 듯합니다. 

주로 순댓국의 쿰쿰함을 덮어줄 달콤 쌉싸름한 한 모금을 찾게 되는 터라 ‘카페 스트라파차토’를 주문합니다. 크레마와 카카오 토핑으로 위를 덮어준 나폴리식 에스프레소라고 설명을 해주시더군요. 에스프레소의 강렬함보다는 한결 누그러진 타협점을 찾는 이들에게도 권할 수 있는 메뉴에요. 물론 저는 기본 카페 에스프레소 한 잔에 설탕 약간 부어 젓지 않고 한잔 먼저, 두 번째로 카페 스트라파차토를 마셔 보시는 것을 더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하지만 난 에스프레소가 너무 힘들다 하시는 분들에게는 카페 오네로소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유와 크림, 에스프레소로 구성된 라테와 비슷한 한 잔입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바에 서서 샷을 재빠르게 마시고 매장에서 나오면서 주머니 속 호두과자를 입에 넣어 주면 오늘의 호핑 루트는 아름답게 마무리가 된답니다. 본식과 간식, 커피까지 즐겨도 2시간이 채 넘지 않는 익스프레스 하고도 알찬 루트로 추천해 드려 봅니다.


전화 070-7677-5538

주소 서울시 중구 다산로8길 16-7

영업시간 07:00-15:30| 일요일 휴무


필자 소개 김 혜 준

사회에 나와 첫 직장인 프랑스 레스토랑 홀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고 프랑스 제과를 정식으로 공부했다. 입맛이 뛰어난 미식가이기보다는 맛의 조합과 구성을 좋아하는 즐식가가 되고 싶은 업계 16년차, 현재는 푸드 콘텐츠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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