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리본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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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리본 20주년 특집 기사> 서울과 한국의 디저트 역사 by 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

2024.12.12 09:14:26

서울과 한국의 디저트 역사


글 김혜준(푸드 콘텐츠 디렉터)

* 본 칼럼은 <블루리본 서베이: 서울의 맛집 2025>에 실린 20주년 특집 기사입니다.


우리네 일상, 가까운 지점에서 미식에 대한 경쾌한 길라잡이가 되어 주는 블루리본서베이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다. 대한민국의 미식 씬의 태동에서부터 점진적인 성장, 외부적 영향으로 인한 침체기를 거쳐 다시금 발돋움을 준비하는 격변의 흐름을 지켜봐 온 미식 평가서로서의 블루리본서베이. 꾸준한 리듬으로 쌓아 온 20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한국의 디저트의 흐름을 함께 되짚어 보자.

빵과 과자, 이 두가지 단어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이가 있을까? 어린 아이부터 노년에 이른 세대까지 마음의 긴장감을 풀어줄 수 있는 포근하고 달콤한 이름. 과연 그 처음은 언제 즈음이었을까? 어떠한 발전 과정을 거쳐 근간의 이 열정적인 인기와 재빠른 변화의 흐름이 만들어져 왔을까?

전쟁은 가슴 아픈 상흔을 안겨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에 따른 문화, 기술의 유입이 이뤄지기도 한다. 1920년대 산미증식 계획을 시작으로 쌀과 맞교환이 된 밀가루가 들어오기 시작, 1945년 광복을 기점으로 한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며 운영하던 화과점이나 빵집의 기술자로 근무하던 한국인들이 사업체를 인수하거나 새로 업장을 연 것이 우리나라의 제과제빵사가 본격적으로 활기를 띄게 된 시기로 기록된다. 100여 년이 채 되지 않은 대한민국의 제과제빵사는 그 기간에 비해 무척 빠른 속도로 장르의 다양성이나 확장성을 보여주고 있다.

혼분식 장려 운동과 미군의 체류로 인한 빵 소비량이 늘면서 현재의 SPC의 모체가 되는 상미당과 같은 양산빵 공장이 등장하였고 점차 동네마다 개인 기술자가 운영하는 제과점들도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한다.

태극당과 이성당, 성심당과 같이 역사적 가치나 지역적인 상징성을 담은 곳도 있지만, 나폴레옹 과자점과 같은 개인 운영의 제과점에서는 공장장들의 기술 연마를 위해 일본 연수를 시도하기도 하고 이들이 추후에 자신들의 매장을 운영하게 되며 리치몬드 과자점, 김영모 과자점 등 점차 한국식 빵집의 형태를 잡아가게 된다.

리치몬드의 권상범 명장, 김영모 과자점의 김영모 명장은 대한민국 제과제빵 명장으로 선정되기도 한다. 뒤이어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펼쳐지면서 일본뿐 아니라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기술자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윈도우 베이커리 또는 부티크 디저트를 만드는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게 된다.

리치몬드 과자점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하며 제자를 양성하던 이호영 베이커는 가로수길에 뺑드빱바라는 이름의 윈도우 베이커리를 오픈하였고 그 제자 중 한 명이었던 정 웅 베이커는 일산에서 시작해 한남동에서 자리를 내린 오월의 종을 열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클래식 디저트의 진수를 전하고 있는 오뗄두스의 정홍연 파티시에의 쿠킹 클래스는 많은 디저트 애호가들의 사랑방을 만들었고 우스블랑 김영수 베이커의 빵은 숙명여대생들의 따스하고 향긋한 추억들을 더해주곤 했다.

대중들 또한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 그리고 ‘제빵왕 김탁구’와 같은 미디어의 영향으로 제과제빵 기술자들의 직업군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되며 전문 교육 기관을 찾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다. 기술의 연마에 더해지는 개인이 지닌 개성과 감각을 더해 플레이트 디저트 그리고 디저트 교육 스튜디오가 생겨나게 되고 ‘파티시에’, ‘베이커’ 또는 ‘셰프’라는 명칭으로 예술적 가치를 더하는 빵과 디저트로 점차 발전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현희 파티시에의 디저트리와 함께 현재 가로수길에서 그 역사를 차분히 써내려가고 있는 성현아 파티시에의 소나, 고재욱 파티시에의 밀갸또 등과 같은 유학파 셰프들의 파인 디저트부터 고은수 셰프의 삐아프, 고영주 셰프의 카카오봄 등과 같은 초콜릿 전문 브랜드도 눈에 띄는 발전을 거듭해왔다.

유럽 빵의 유행과 안정화를 위해 힘쓰는 베이커들의 노력으로 동네 빵집의 다양성 또한 풍요로와졌다. 임태언 베이커의 르빵은 꾸준히 바게트와 크루아상과 같은 프랑스 빵 문화와 함께 기술자들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밀도, 장 블랑제리 등의 빵 전문 브랜드도 로드샵 뿐 아니라 백화점 식품관 등에서 꾸준히 그 명성과 인기를 지켜오고 있다. 성수동의 뺑드에코, 합정동의 395빵집, 서초동의 바게틴 등 또한 기술자의 개성과 기술이 담긴 빵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단순히 빵과 케이크에 머물러 있던 소비자들의 인식이 젤라토, 초콜릿, 주문 케이크 등 좀 더 넓은 장르의 다양성에 눈을 뜨게 된 점도 한국의 디저트 문화의 질과 양이 함께 발전하게 된 큰 요인 중 하나다.

그간 기술자들이 소비자들의 보수적인 입맛과 모험을 시도하는 유럽의 기술을 더한 제품들을 안정적인 비율로 선보여 왔다면 2000년대에는 소비자들이 하나의 트렌드 콘텐츠로 빵과 디저트를 소비하는 성향이 눈에 띈다. 기술적 조화로움보다는 SNS를 통해 노출하기에 좋은 시각적 볼륨감과 이벤트성 요소들이 돋보이는 슈니발렌, 대만 카스텔라, 뚱카롱, 약과 등과 같은 변화구 아이템들이 10대들에게서부터 반응을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이다.

그간 개인 기술자가 주도하는 업장이 산업의 핵심 포지션으로 자리잡았다면 근래에는 패션, 사모펀드와 같이 제과제빵과 관련이 없는 기업의 자본으로 문을 여는 해외 브랜드 빵집과 제과점 그리고 코끼리베이글, 런던베이글뮤지엄 등과 같은 큰 규모의 원 아이템 브랜드들이 인기를 얻는 새로운 흐름이 공존하고 있다. 소비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산업적인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해외 유명 유통 기업이 국내 브랜드들을 주시하며 해외 진출을 제안하는 일 또한 급증하고 있는 점도 생명력 있고 흡입력 있는 한국 제과제빵 산업의 매력을 알아보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성장해 온 속도와 과정을 넘어서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큰 기대가 되는 대한민국의 빵과 디저트를 산업. 이를 만드는 기술자들의 창의성과 유려한 기술력이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고 사랑받게 되는 안정적인 시장을 기대해 본다. 


필자 소개 김 혜 준

사회에 나와 첫 직장인 프랑스 레스토랑 홀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고 프랑스 제과를 정식으로 공부했다. 입맛이 뛰어난 미식가이기보다는 맛의 조합과 구성을 좋아하는 즐식가가 되고 싶은 업계 16년차, 현재는 푸드 콘텐츠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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