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하는 노석미 작가 집에 놀러갔다 우연히 작가의 그림을 보고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질렀어요. 음식 그림의 색감이 너무 화사하고 예뻐서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환해지고 행복해지는 걸 느꼈거든요. 독자들에게 제가 느낀 행복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노석미 작가의 책 <먹이는 간소하게>에 나온 달래달걀밥. [사진 사이행성]
노석미 작가의 그림 에세이 『먹이는 간소하게』를 기획한 출판사 사이행성의 편집자 김윤경씨의 얘기다. 이 책엔 노 작가가 10여년간 전원생활을 하며 경험한 시골 생활과 그가 먹은 사계절의 소박하지만 담백한 밥상이 담겨 있다. ‘단순하고 예쁜, 그리고 담백한 음식을 만들어서 먹고 살고 싶다’는 작가의 철학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이를 더욱 와닿게 하는 건 그의 그림이다. 엄마가 사준 복숭아나무에서 수확한 복숭아로 만든 달콤한 복숭아조림, 하얀 밥 위에 얹은 달래장과 달걀후라이 등 책 속 그림에선 온기가 느껴진다.
노선미 그림 에세이 <먹이는 간소하게> 소박하면서 담백한 노 작가의 밥상을 그린 그림과 여기에 얽힌 일상을 소개한 책이다. [사진 사이행성]
산문집·조리서, 사진 대신 그림으로 음식 표현
소설가 권여선 작가의 음식 산문집 <오늘 뭐먹지>. 계절에 어울리는 다양한 음식을 그림과 함께 담아냈다. [사진 한겨레출판]
이 책뿐이 아니다. 최근 서점에선 그림으로 음식을 표현한 책들이 눈에 띈다. 산문집부터 조리서까지 장르에도 한계가 없다. ‘음식 산문집’이라는 컨셉트로 작가의 식도락 이야기 속 음식을 그림으로 담아낸 책도 있다.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의 권여선 작가의 첫 산문집 『오늘 뭐 먹지?』다.
이 책은 계절에 어울리는 다양한 음식을 소개한다. 작가가 대학 시절 처음 먹은 순대부터 따뜻한 밥 위에 셔벗처럼 올려 참기름을 뿌린 후 구운 김과 함께 먹는 백명란 등 소설에선 미처 풀어내지 못했던 먹고 마시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글을 더욱 맛깔나게 하는 건 그림이다. 이 책을 기획한 한겨레출판 문학팀 임선영 팀장은 “책에 등장하는 음식 대부분이 추억 속의 음식으로 사진으로 이를 상세하게 구현하기 어려워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썰지 않고 통째로 먹었던 김밥이나 엄마랑 먹던 나물은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그 느낌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었다.
<이유석 셰프의 이유식>. 이 책은 엄마와 아이가 함께 보는 그림책 같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이 셰프의 바람으로 조리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사진 블루리본서베이]
레시피 책도 예외가 아니다. 프렌치 가스트로 펍 ‘루이쌍끄’를 운영하는 이유석 셰프가 쓴 『이유석 셰프의 이유식』은 조리 도구나 조리 과정을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표현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볼 수 있는 그림책 같은 요리책을 만들고 싶어 이 셰프가 먼저 출판사에 제안했다.
음식 그림을 담은 책은 외국에서도 인기다. 대표적인 책이 일본의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다. 이 책은 시노다 나오키씨가 스물여덟이던 1990년 8월부터 28년 동안 매일 먹은 삼시 세끼를 그림으로 기록한 것을 책으로 묶은 것으로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출간돼 화제가 됐다.
그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90년대엔 디지털카메라가 없었고 필름 카메라는 현상이 필요해 매일 기록용으로 적절치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림으로 음식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는 올해 후속편인『시노다 부장의 식사일지』를 펴낸 기념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사진보다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그림의 매력
권여선 작가의 음식 산문집 <오늘 뭐 먹지>에서 작가가 어린 시절 썰지 않고 통째로 김밥을 먹는 모습을 그린 그림. [사진 한겨레출판]
사진 대신 그림으로 음식을 표현하는 이유는 뭘까. 먼저 신선함이다. SNS에 자신의 일상을 공유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게 바로 음식 사진이다. 항공 샷(카메라를 음식 위에 수평으로 놓고 찍는 것)과 색·명도를 조절해주는 음식 전용 앱 푸디 등을 사용하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처럼 비슷한 구도와 색감의 음식 사진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색다른 표현법을 찾기 시작했고 그림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엔 해시태그(#) ‘음식그림’을 단 게시물이 3850개가 넘는다. 햄버그스테이크·가츠샌드·김밥·연어덮밥·떡볶이·삼겹살 등 음식 종류도 다양한데, 연어에 흐르는 윤기부터 김밥 속 재료의 다채로운 색까지 세심하게 그려냈다.
아예 음식 그림만 올리는 계정도 있다. 취미로 그림을 배우는 사람들에게도 음식 그림은 필수다. 자신이 맛본 음식을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그려 공유하며 즐거움을 느낀다. 사진 일색인 SNS에서 음식 그림은 신선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책도 마찬가지다.
노석미 작가가 그린 감. 단단한 감이 곶감이 돼 가는 과정을 표현했다. [사진 사이행성]
음식 웹툰의 인기도 음식 그림의 인기를 견인했다. ‘오무라이스 잼잼’ ‘공복의 저녁식사’ ‘밥 먹고 갈래요?’ 등의 인기 웹툰은 음식 사진이나 TV 속 먹방보다 더 먹음스러워 보이는 음식 그림으로 매니어층이 두껍다. 사이행성의 김윤경씨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림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데 몇해 전부터 컬러링북이나 웹툰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게 대표적인 예”라며 “특히 인스타그램 등 SNS 속 사진이 흔해지면서 오히려 음식 그림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나 선호도가 더욱 커졌다”고 설명했다.
그림 특유의 온기는 음식을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게 하는 힘도 있다. 한겨레출판 임선영 팀장은 “사진은 아무리 잘 찍어도 따뜻함, 온기를 전하기 어려운데 그림은 마음으로 전해지는 온도가 표현돼 더 맛있어 보인다”고 강조했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