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리본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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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범 커피 평론가의 블루보틀 성수점 방문기 - ②편

2019.06.19 12:09:54

• 사진 심재범


<이 글에 나온 블루보틀 커피 시음 순서>

① 싱글오리진 에스프레소 (‘에티오피아 함벨라’ 싱글오리진 원두)

② 블렌딩 에스프레소 (‘헤이즈 밸리’ 블렌딩 원두)

③ 지브롤터라테 

④ 블렌딩 드립커피 (‘벨라 도노반’ 블렌딩 원두)

⑤ 뉴올리언스


지난 편(블루보틀 성수점 방문기 - ①편, https://www.bluer.co.kr/magazine/109)에 이어 이번 글에서는 블루보틀에서 맛본 커피에 대해 말하려 한다. 이날 방문해서 블루보틀의 상징적인 커피를 기준으로 다양한 커피를 시음했다. 내가 선택한 커피는 ‘에티오피아 함벨라 원두’로 내린 싱글오리진 에스프레소와 블렌딩 에스프레소, 지브롤터라테, 블렌딩 드립커피, 뉴올리언스 총 다섯 가지다. 


에스프레소와 드립커피는 싱글오리진 원두와 기본 블렌딩 원두 중 선택할 수 있는데, 에스프레소는 ‘에티오피아 함벨라’ 지역의 싱글오리진 원두로 내린 에스프레소와 ‘헤이즈 밸리’라는 이름의 블렌딩 원두로 내린 에스프레소를 모두 주문해 맛보았다. 블루보틀의 시그니처메뉴인 지브롤터라테와 ‘벨라 도노반’ 블렌딩 원두로 내린 드립커피, 뉴올리언스도 함께 주문했다. 지브롤터라테는 투샷의 에스프레소에 기반하여 유리잔(지브롤터 글래스)에 담겨 나오는 진득한 밀크커피이며, 뉴올리언스는 콜드브루 커피 베이스에 약간의 가당과 치커리를 넣은 베리에이션 음료다. 에스프레소 음료, 드립커피와 베리에이션 커피가 별도의 섹션에서 만들어져 두 번에 걸쳐서 커피가 준비되었다.


<싱글오리진 에스프레소와 블렌딩 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 추출은 라마르조코(La Marzocco) 피비 스케일(PB scale)로 이루어졌는데, 비교적 무난한 에스프레소 머신이다. 라마르조코의 하이엔드 모델인 스트라다(Strada)처럼 온도, 압력 같은 변수를 통제하지 못하지만, 직선적인 디자인과 안정적인 내구성으로 꾸준한 추출에 적합하다. 그라인더는 로버(Robur)와 피크(Peak)다. 코니컬 스타일의 로버는 향미 위주의 싱글오리진 전용으로 사용하고, 스위트니스1를 잘 표현하는 피크 그라인더는 블렌딩 커피를 분쇄할 때 사용하고 있었다. 머신은 평범했지만, 그라인더는 커피의 성향과 정확하게 어울렸다. 


싱글오리진 에스프레소는 오버사이즈 유리잔에 담겨나왔고, 블렌딩 에스프레소는 전통적인 데미타세 잔에 서빙되었다. ‘에티오피아 함벨라’ 싱글오리진 에스프레소는 에티오피아 커피 테루아의 특징인 차분한 산딸기의 느낌과 초콜릿, 캐러멜의 스위트니스가 길게 이어졌다. ‘헤이즈 벨리’ 블렌딩 에스프레소는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쌉싸름하고 쓴맛, 단맛이 적절히 강조된 평이한 느낌이었다. 


블렌딩 에스프레소에 비해서 싱글오리진 에스프레소는 플레이버2에서 밸런스3, 애프터테이스트4까지 전반적으로 안정감 있게 도출되었다. 싱글오리진 원두로 선택한 ‘에티오피아 함벨라’는 우리나라의 ‘커피리브레’와 ‘나무사이로’에서 과거에 선보였던 바 있는 산지다. 에티오피아 커피 원종의 특징인 달콤한 산딸기와 가벼운 초콜릿, 캐러멜 향기가 근사하다. 로스팅 포인트는 중배전 느낌의 쌉싸름하고 달콤한 스위트니스에 기반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의 입맛에 가깝게 로스팅 포인트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중배전 이상으로 로스팅해 에티오피아 커피 로스팅에서 대중적인 부분을 강조하였다. 로스팅 포인트가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의 싱글오리진 에스프레소를 선보일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러웠다.


<지브롤터라테>

이어서 지브롤터라테를 맛봤다. 지브롤터라테는 유리잔에 서빙되는 블루보틀 특유의 진득한 밀크커피다. 투샷을 기반으로 하여 향미가 압축되고 질감이 진득하며 유리잔(지브롤터 글래스)이라 뜨겁지 않아 고소하고 달콤하다. 밀크커피의 경우 60℃ 이상으로 스팀되면 우유의 단백질 성분이 경화되어 특유의 비린내가 도드라진다. 지브롤터라테는 초기 샌프란시스코 1호점의 바리스타들이 작업하면서 마시던 커피였는데, 단골들에게 알려지면서 블루보틀의 대표적인 밀크커피로 자리 잡았다. 스타벅스커피 앰배서더 출신인 잠실의 ‘카페더블’ 한상철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커피와 우유의 대립이 직선적이고 맹렬하지 않고 양질의 우유와 커피의 밸런스가 유화적으로 진행되어, 커피의 향미와 스위트니스가 배가된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도 한국 블루보틀에서 가장 인상적인 커피였다. 


<블렌딩 드립커피>

마지막으로 맛본 커피는 드립커피와 뉴올리언스다. ‘벨라 도노반’ 블렌딩 원두로 내린 드립 커피는 약간 아쉬웠다. 블루보틀의 상징적인 드립 커피스탠드에 다양한 종류의 커피가 준비되지 않았고, 로스팅 포인트도 평이하고 블렌딩의 지향점 역시 밋밋함에 가까웠다. 한국에서 많이 찾는 일반적인 블렌딩 아메리카노 혹은 폴바셋의 롱블랙 같은 진득한 맛을 지향한 듯하지만, 향미 있는 커피들이 무난함을 지향한 부분이 아쉬웠다. 다만 다양한 커피를 맛보지 못했고 개점 초기라는 점을 반영한다면 향후 드립커피의 방향성을 천천히 논의해도 될 것 같다. 


<뉴올리언스>

뉴올리언스는 콜드브루 커피에 가당을 하고 우유와 치커리 등을 첨가한 아이스음료다. 개인적으로는 콜드브루 특유의 두터운 느낌을 좋아하지 않지만, 블루보틀 콜드브루의 산미를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인 감상 및 총평>

전체적인 느낌을 정리하자면, 에스프레소 기반 음료는 그라인더 세팅에 따른 커피의 특성을 잘 발현한 것으로 보였다. 드립커피는 조금 평이했고, 뉴올리언스는 개인의 취향차가 크게 느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인상 깊은 커피는 지브롤터라테. 샌프란시스코 1호점, 뉴욕 첼시매장, 도쿄 기요스미 매장의 커피보다도 좋았다. 향미와 스위트니스, 밸런스 좋은 커피와 적절히 데워진 우유의 궁합이 상당히 좋았다. 블루보틀의 밀크커피가 상당히 인상적이라 관계자 지인들을 통해 자료를 확인해보았다. (특정 브랜드를 설명하기는 조심스럽고) 한국 블루보틀의 경우는 단일농장, 저온살균, 마이크로필터, 유기농 우유를 사용하고 있다. 품질만큼 가격도 비싼데, 1ml 당 원가를 기준으로 일반 매장우유는 1.95원, 블루보틀의 우유는 4.66원이다. 대형 커피매장에서 사용하기에 쉽지 않은 가격이다. 블루보틀의 커피 대부분이 예측가능한 수준의 스페셜티 커피라는 느낌이었지만, 밀크커피의 품질을 위해서 과감하게 투자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블루보틀을 다녀온 이후 밀크커피를 많이 마시게 되었다. 최근에 방문한 강남 ‘펠트커피’의 플랫화이트가 블루보틀 커피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다. 물론 당연한 것이겠지만, 국가대표급 ‘펠트커피’ 바리스타의 추출실력과 양질의 커피의 궁합 때문이라 생각된다. 참고로 ‘커피리브레’, ‘나무사이로’, ‘엘카페’, ‘프릳츠’, ‘커피몽타주’의 커피는 이미 세계 시장에서도 블루보틀 커피보다 한 수 위로 평가받는다. 다만 블루보틀 커피 성장 기반으로 고부가가치와 함께 바리스타의 처우 개선을 중요한 포인트로 꼽을 수 있다는 점은 눈여겨 살펴볼 만하다. 개인적으로 블루보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안정적인 실력과 차분하고 사려 깊은 바리스타의 호스피탈리티였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이룬 성과뿐만 아니라 영화 관계자들의 기본처우를 개선하는 데 큰 반향을 일으켰듯이, 우리나라에 블루보틀이 오픈한 이후 한국의 스페셜티 커피 업계 전체에 직원들의 휴식과 처우개선이 다시 한번 화두가 되었다. 


블루보틀의 한국 상륙을 환영하고 바리스타와 커피 업계뿐만 아니라 손님들까지 선순환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어느새, 우리들이 마시는 커피 한 잔에 생산 농민을 존중하는 스페셜티 커피의 노력과 바리스타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사회의 변화가 녹아 들어가고 있다. 



저자 주:

1. 스위트니스(sweetness): 커피 맛에서 느껴지는 달콤함. 전세계 표준인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 커피 품질 연구소에서 커피 맛을 평가할 때 쓰는 척도 중 하나다.

2. 플레이버(flavor): 우리나라 말로 향미를 뜻하며, 커피의 향기를 말한다. 스페셜티 커피에는 다양한 향기가 있는데, 큰 범주로 정리하자면 과일향기, 꽃향기, 초콜릿, 캐러멜 등이 있다. 국가별로 약간의 뉘앙스 차이는 있다.

3. 밸런스(balance): 향미, 산지, 질감, 스위트니스 등 커피의 여러 가지 맛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느냐의 느낌이다. 복합적이더라도 입안에서 다양한 맛과 향기가 기분 좋게 느껴지면 좋은 커피라 할 수 있다.

4. 애프터테이스트(aftertaste): 입안에 맴도는 여운을 의미하는데, 스페셜티 커피와 상업 커피의 차이점으로 가장 많이 부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스페셜티 커피는 입안에 감도는 여운이 깊고 우아하다. 


<필자 약력> 심 재 범

한국 커피 교육협회 바리스타이며 Australia Tourism Department Certified Barista와 SCAA CQI Star Cupper, SCAA CQI Q-Arabica Grader까지 취득한 한국 최고의 커피 평론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날아다니며 다양한 커피를 맛보고 있다. 저서로는 《카페마실》과 《스페셜티 커피 인 서울》, 《동경커피》, 《교토커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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