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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맛, 여행에 대한 이야기
- 빠르게 급변하고 있는 싱가포르 스페셜티 커피를 만나다
글 • 사진 심재범
싱가포르가 후끈하다. 전통적으로 관광 산업이 발달하고 사회 시스템이 안정적인 싱가포르는 최근 들어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과 센토사섬 등의 명소가 재단장하면서 여행지로 더욱더 주목받고 있다. 다만 일반적인 열대 휴양도시처럼 양질의 스페셜티 커피를 만나볼 기회가 적어 아쉬웠는데, 몇 년 사이에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다. 현재 싱가포르 스페셜티 커피업계의 발전 속도는 홍콩, 타이완과 함께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고 급격하다. 전통의 나일론커피를 비롯해 젊은 커피인이 참여하는 파파팔헤타 커피그룹이 운영하는 체승홧철물점, 싱가포르까지 진출한 일본의 아라비카, 구라수커피까지. 다양한 커피인이 참여하는 싱가포르의 스페셜티 커피를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1. 나일론커피 (Nylon Coffee Roasters)
싱가포르는 대만, 홍콩과 유사한 화교 문화권이지만 커피 발전에 있어서 그들과 결이 다르다. 안정적인 사회 배경을 바탕으로 호주, 한국, 일본의 영향을 골고루 받았다. 호주에서 받은 영향으로 올데이 브런치와 같은 음식을 파는 곳이 많고, 한국처럼 다이내믹하고 일본의 구라수커피(Kurasu Coffee)나 아라비카(Arabica)와 같은 커피 매장도 쉽게 자리를 잡았다. 차이나타운 남쪽에 자리한 나일론커피는 해외 커피인 사이에서 더욱 유명한 싱가포르 현지 최고의 스페셜티 커피 매장이다.
매장은 티옹바루(Tiong Bahru)에서 가까운 차이나타운 남부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다. 오트램파크(Outram Park) 역에서 도보 5분 정도 걸으면 나온다. 오래된 아파트 상가 1층, 통상적으로 카페가 있을 만한 위치는 아니지만, 매장 주변으로 커피향이 그윽하고 단골이 끊이지 않아서 카페를 찾기가 수월하다.
나일론커피는 음식은 판매하지 않고 로스팅과 추출에만 전념하는 정통 커피 매장이다. 추천메뉴는 시즌 에스프레소와 밀크커피. 신선한 싱글 오리진을 기반으로 메인 커피를 구성하고 있다. 최근에 방문했을 때는 엘살바도르 라스팔마스(El Salvador Las Palmas) 원두를 에스프레소로, 콜롬비아 엘미라도르(Colombia El Mirador) 원두를 플랫화이트 커피로 마셨다. 엘살바도르 라스팔마스 커피는 1,000m 고도에서 재배된 파카스 품종의 원두를 미디엄 로스팅해 풀샷으로 추출했다. 중간 산미에 파카스의 개성을 적절한 로스팅으로 구현하여 과일향과 꽃향이 초콜릿처럼 조화롭게 표현되었다. 나일론커피는 로스팅에서 클린컵1을 잘 표현하는데, 특히 콜롬비아 엘미라도르로 내린 플랫화이트 커피는 우유와의 궁합에서도 커피의 깨끗함이 기분 좋게 이어졌다.
매장이 작고 아담하지만, 지역 주민이 애정이 매장 전체에 잘 표현된 곳이다. 센토사 섬과 오키드거리 같은 관광지는 아니지만, 싱가포르에서 맛있는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면, 잠시의 고민도 없이 추천하는 곳이다.
2. 체승홧철물점 (Chye Seng Huat Hardware)
싱가포르는 오키드거리를 비롯한 중심가가 우리나라 서울의 명동과 유사한데, 이러한 중심가는 센토사 지역 놀이공원, 남쪽 차이나타운, 북쪽 외국 노동자 거주지가 혼합된 주택가다. 과거에는 중심가와 남부 차이나타운 지역 위주로 개발되었다면, 최근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으로 북쪽의 주택가가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매장이 자리한 지역은 우리나라 을지로처럼 북쪽 지역의 오래된 공구점과 기술자들이 모여 있는 거리다.
체승홧철물점은 파파팔헤타(Papa Palheta)라는 커피 기업이 철물점 외관을 재생해 만든 매장이다. 겉에서 볼 때는 평범한 철물점처럼 보이지만, 매장 내부를 보면 싱가포르에서 가장 트렌디한 커피 매장임을 알 수 있다. 파파팔헤타 커피 기업은 싱가포르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커피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여러 업체와 다양한 컬래보레이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3년 전 영국 스퀘어마일의 수석 로스터이자 국가대표였던 박상호 바리스타도 이곳의 초청으로 로스팅, 추출과 관련된 세미나를 진행한 경험이 있다.
체승홧철물점은 커피뿐만 아니라 크래프트 맥주,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고 있으며 저녁 시간에는 멋진 바(bar)로 변해 방문 시기에 따라 분위기가 다채롭게 바뀐다. 커피는 다양한 품종, 지역, 프로세스 등을 실험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블렌딩부터 싱글 오리진 커피, 에스프레소 푸어오버(핸드드립)까지 다양한 커피를 만날 수 있다. 최근 방문했을 때는 케냐 싱글 오리진 에스프레소를 마셨는데, 강렬한 산미를 임팩트 있게 추출했다. 커피 종류가 많아 변수가 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와 다양한 커피를 고려하면 나일론커피와 함께 싱가포르의 스페셜티 커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으로 꼽힌다. 나일론커피가 류현진의 포심패스트볼처럼 커피에만 전념하는 매장이라면, 체승홧철물점은 현란한 팔색조 변화구를 연상케 한다.
3. 그 외 – 아라비카싱가포르 (Arabica Singapore), 파이브오어스커피 (Five Oars Coffee), 알케미스트커피 (Alchemist Coffee)
아라비카싱가포르 외관
홍콩, 일본 교토에서 시작한 아라비카커피(속칭 ‘응커피’. 로고인 ‘%’가 우리나라 글자 ‘응’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렇게 불리기도 한다.)도 싱가포르에서 화제가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나일론커피 주변에 자리한 파이브오어스커피와 알케미스트커피가 인상적이었다.
(왼쪽: 파이브오어스커피의 에스프레소 / 오른쪽: 알케미스트의 커피)
파이브오어스커피는 체승홧철물점에 비견될 만큼 다양한 음식과 커피를 겸하는 스페셜티 커피 매장이고, 알케미스트커피는 소박한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이다. 배치브루2를 포함한 커피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4. 번외 – 싱가포르의 음식
번외편으로 싱가포르의 음식을 간단히 소개한다. 싱가포르는 홍콩과 함께 아시아 스트리트 미식의 도시로 손꼽힌다. 싱가포르인이 보양음식으로 꼽는 바쿠테(우리나라 갈비탕과 유사한 음식으로, 우리 입맛에 의외로 잘 맞는다.)를 비롯해 하이난 스타일의 치킨라이스(하이난에서 영향을 받은 싱가포르 국민 음식. 담백하게 양념한 닭고기와 닭육수로 지은 밥, 육수가 잘 어울린다. 저렴하고 맛도 좋다.), 싱가포르식 포장마차 우동인 용타우푸를 강력히 추천한다. 무더위 속에서 체력을 비축하고 고향의 추억을 떠올리는 현지인의 음식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송파바쿠테(Song Fa Bak Kut The) , ‘티옹바루 치킨라이스(Tiong Bahru Chicken Rice)’, 차이나타운 호커센터에 자리한 ‘용타우푸 (Xiu Ji Ikan Bills Yong Tao Fu)’가 현지에서 가장 평가가 좋다. 싱가포르의 음식은 저렴하지만 소박하면서도 정겹고, 커피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다. 맛있는 커피와 음식이 함께라면 여행의 추억이 더욱 특별해질 것이다.
저자 주:
1. 클린컵(Clean cup): 커피 외에 다른 맛이 나지 않은 깨끗한 느낌의 청량감을 말한다.
2. 배치브루(Batch brew): 대량으로 추출해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블랙커피를 말한다.
<필자 약력> 심 재 범
한국 커피 교육협회 바리스타이며 Australia Tourism Department Certified Barista와 SCAA CQI Star Cupper, SCAA CQI Q-Arabica Grader까지 취득한 한국 최고의 커피 평론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날아다니며 다양한 커피를 맛보고 있다. 저서로는 《카페마실》과 《스페셜티 커피 인 서울》, 《동경커피》, 《교토커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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