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리본 매거진

음식과 맛, 여행에 대한 이야기

2023년의 베스트 뉴테이스트 by 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

2024.01.05 09:52:35

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의 2023년 베스트 뉴테이스트 업장 다섯 곳, 제로컴플렉스, 스틱윗미, 마사마드레, 호라파, 안재식당을 소개한다. 


1. 제로컴플렉스 zero complex

서래마을, 북창동 피크닉 빌딩에 이어 세 번째 공간으로 결정한 서빙고 어느 골목 안쪽으로 들어섰다. 아, 마치 유럽 어디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당도했을 듯한 느낌, 단정한 복장의 직원이 골목 언저리에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혹여라도, 아니 백 퍼센트 찾지 못할 거란 것을 알고 설정해 둔 장치였다. 

오랜만에 느끼는 이 생경한 호스피탈리티. 이 모든 복합적 감정은 어릴 적 방문한 부잣집 문턱을 넘어서는 그런 기분 마냥 살짝 불편하면서도 무척 설레고, 재미있는 경험으로 남았다. 제로컴플렉스와 이충후 셰프가 추구하는 네오 비스트로,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군더더기 없이 미니멀한 그 조합의 매력은 내추럴 와인과의 페어링에서 더 큰 빛을 발하기도 했기에 새로 재단장한 제컴의 모습이 무척 궁금했다.

새로 올린 건물의 1층은 키친, 2층은 테이블과 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옅은 크림색의 따스한 느낌이 그동안 제컴의 차갑지만, 재치 있는 젊음이 다음 단계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듯했다. 이충후 셰프가 제컴과 함께 성장하고 세월을 덧입은 그 과도기를 그의 플레이트를 통해 만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묘하게 그의 지난 음식들은 코스 구성이지만 각각의 개성이 단품처럼 느껴지는 매력이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이전한 후의 음식들은 단결력이 좋은 팀이 함께 매만져 내놓는, 보다 구성이 탄탄하고 이어지는 리듬에 힘이 떨어지지 않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멋이 있었다. 

송현태 소믈리에와 그의 홀 팀이 선보이는 유려한 흐름의 서비스는 음식의 맛과 풍미를 배가시키는 에너지가 더욱 높아졌다. 식사에 맞춰 서브하는 와인의 라인업과 그것을 풀어내는 자연스럽고 즐거운 서비스가 무척 만족스러웠다.

장난처럼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한다는 이충후 셰프의 코멘트가 절대로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무게감이 디시마다 불편하지 않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무르익은 중년으로 스테이지가 시작되는 삶의 여정처럼 제로컴플렉스는 확실히 원했던 변화의 목표에 도달해 가고 있는 듯하다. 2023년 발견한 새로운 제컴의 발견은 참으로 신선했다.


2. 스틱윗미 Stick with me

뉴욕에서 스틱윗미의 초콜릿 봉봉을 맛보았던 것이 벌써 10여 년이 다 되어 가는데 한국 압구정동에 첫 브랜치가 등장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신선한 기분이었다. 한국에서 사랑받는 초콜릿 브랜드들의 이미지나 맛을 구현하는 방향은 무척 우아하고, 단아한 편에 가까운 터라 펑키한 캐릭터와 화려한 배색의 터치는 확실히 차별화가 되었다. 미국 뉴욕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수잔나 윤의 시즈널 초콜릿이나 한국적인 위트가 더해지는 플레이버들을 만날 수 있다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브랜드의 등장이었다.

한국 키친 멤버들이 뉴욕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열정적으로 트레이닝을 받아온 것은 수잔나 윤과 서울에서 조우하며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추석과 연말과 같은 특별한 시기 그리고 다양한 브랜드들과의 협업을 거쳐 가며 보여주는 실력에 자연스레 일부러 찾게 되는 초콜릿 브랜드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나의 원픽은 단연 오렌지 콩피. 오랑제뜨라고도 불리는 이 오렌지 필 당절임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코팅을 더 해 비행이나 기차를 타고 출장을 갈 때마다 꼭 챙기는 필수템이다. 드라제라고 하는 메뉴도 다양한 견과류를 번갈아 가며 사용해 완성하는데 마카다미아 드라제는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런 중독적인 맛이다. 책의 형태로 구성된 패키지도 모으는 재미가 있고, 선물하는 재미까지 더해준다. 앞으로의 다양한 플레이버들은 또 어떻게 구현해 낼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2024년을 기다려야지.


3. 마사마드레 Masa Madre

서촌에서 맛있는 빵집을 찾기는 참 쉽지 않은데,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한 마사마드레 덕분에 근처 커피 전문점과 문구류 전문점을 엮어 소풍을 나가기 좋은 루트가 만들어졌다. 

빵의 반죽을 의미하는 마사마드레의 의미처럼 매일 발효종을 어루만지며 겉 크러스트가 아주 고소하다 못해 구수한 매력적인 유럽빵을 만드는 이곳의 숨은 매력은 요리의 터치가 제대로 들어간 샌드위치와 프렌치토스트라고 했다. 일전에 요리하시기도 한 주인장의 손맛이 빵에도 더해지는 이런 재미있는 완성도를 좋아한다. 그냥 손으로 거칠게 뜯어 베어 물어 먹어도 좋은, 치즈나 오일, 스프레드를 더해 와인과 함께 곁들이기에도 아쉬움이 없다.

잘 만들어진 도화지 같은 빵을 만난 것이다. 그 어떤 요소를 더해도 모두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바탕을 지닌 종이같이 말이다. 빵의 기초적인 역할을 충실히 하는 기분 좋은 빵을 만날 수 있어 무척 반가웠던 마사마드레.  


4. 호라파 HORAPA

작년 연말에 태국에 다녀오면서 태국 중부와 이싼 지역의 대표적인 요리 마스터들을 뵙고 이틀 정도 쿠킹 클래스를 받았던 귀한 기회가 있었다. 이때 3분의 셰프님을 만나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들의 음식을 먹으며 내가 지금까지 알아 온 태국 요리에 대한 신선한 배신감과 함께 향신채와 신선한 해물, 페이스트의 조합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그 진한 맛과 산미, 향을 그리워하고 있던 찰나, 서촌에 새로 생긴 호라파라는 태국 요리 전문점을 소개받았다. 내게도 익숙한 데이비드 톰슨의 nahm이라던가 한국에도 론칭했던 브랜드의 오픈 멤버로 근무했던 젊은 손승희 셰프가 문정섭 셰프와 함께 시작한 작은 태국 음식점 호라파는 내겐 아주 달가운 단비 같은 곳이었다. 

숯을 태워 구워 낸 태국식 구이 요리부터 야무지게 한국의 제철 과일이나 채소를 더해 매만진 솜 땀, 한국의 신선한 식재료를 태국 요리에 정통성을 잃지 않은 톤을 유지하며 만들어 낸다. 

기존의 태국 음식점과는 또 다른 결을 만들어 내는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다. 여럿이 모여 함께 즐기며 먹을수록 좋은 호라파의 음식을 못 먹어본 사람 없게 해주세요!


5. 안재식당

누구에게나 나만 알고, 간직하고 싶은 포켓 속 소중한 달콤이 같은 식당이 있을 것이다. 안재식당은 내게 그런 곳. 잠시간 휴업을 하시다가 예전 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넓고 쾌적한 분위기의 안재식당 2.0을 열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가오픈 기간에 엄마를 모시고 오픈런을 했다. 한식당들에 있어서 엄마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 드리기란 어려운 일. 그만큼 안재식당에 대한 나의 신뢰와 믿음은 강했고 역시나 그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 주는 찬과 밥, 국 그리고 일품요리들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나오게 되었다. 

소위 그 시기마다 달라지는 찬과 국들의 구성은 백반과 같지만 하나하나 재료의 원산지나 조리 방법, 어머니의 장과 같은 특별한 포인트들이 안재만 대표의 성실한 투지와 만나 행복한 밥상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부디 지치지 말고 오래오래 요리해 주세요. 건강하고 행복한 밥을 오래 먹고 싶어요.


필자 소개 김 혜 준

사회에 나와 첫 직장인 프랑스 레스토랑 홀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고 프랑스 제과를 정식으로 공부했다. 입맛이 뛰어난 미식가이기보다는 맛의 조합과 구성을 좋아하는 즐식가가 되고 싶은 업계 16년차, 현재는 푸드 콘텐츠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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