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리본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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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렌치 수프’ - 김혜준의 TREND ISSUE 04

2024.06.26 09:25:20

요리와 관련된 미디어 콘텐츠, 영화나 소설은 우리가 직접 마주하는 플레이트 위 요리와 다르게 감각적인 연출과 설정을 통해 감흥을 자아냅니다.

지금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행하거나 쟁점이 되는 콘텐츠로 다뤄지는 요리 관련 작품들을 만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떠올려 본다면 영상미가 뛰어나고 연출의 자연스러움이 도드라지는 요리 영화들은 단숨에 손에 꼽히곤 합니다.

극 중 미식에 대한 담론을 펼치는 그 시대의 미식가들

얼마 전 무척 완성도 높은 요리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저는 개봉 전 시사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셰프님들과 함께 먼저 관람할 감사한 기회가 있었습니다. 단순히 요리의 인문학적, 기술적 포인트들을 부각하기보다 영화적 스토리와 뼈대에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었는데요. 전문적으로도 아쉬움이 없는 고증과 연출이 결합한 보기 드물게 훌륭한 작품이었다는 피드백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완벽한 구성의 프렌치 키친

바로 영화 ‘프렌치 수프 The Pot-au-Feu’의 이야기입니다. 원제인 ‘La Passion de Dodin Bouffant’에서 유추할 수 있듯 마르셀 루프의 소설 속 프랑스의 미식가 도댕 부팡의 인생 이야기가 가장 큰 틀로 작용합니다. 

그와 그의 아내 외제니 사이에서 흐르는 아름다운 요리에 대한 열정, 계절이 선사하는 소중한 식재료를 사용해 멋진 프렌치 키친에서 요리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실제 트란 안 홍 감독의 부탁으로 이 영화의 모든 요리는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의 감수와 도움으로 구현되었습니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 멋진 역할로 출연한 위트도 아주 프렌치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영화에 출연한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

극 중 외제니와 도댕

요리의 아버지라 칭송받는 앙토낭 카렘의 프랑스 정찬에서부터 9년 정도의 시대적 간극으로 이어지는 오귀스트 에스코피에의 누벨 퀴진까지 읽어내는 극 중 흐름이 아주 즐거운 미식 TMI로 작용합니다. 브루고뉴 와인들은 또 얼마나 마시고 싶어지는지요.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서양 배 디저트

어느 한 잡지에서 트란 안 홍 감독에게 질문했습니다. 그의 영화 속에서 연출되는 요리 장면을 꼽아 음식과 감독의 개인적 관계성에 관해 물어보았는데요. 감독은 베트남에서 일꾼으로 살던 부모님의 이야기를 녹였다고 답변했습니다. 

노을빛이 부엌 한편에 스며들기 시작할 즈음이면 어머니가 시장에서 장을 봐 온 재료들을 펼쳐 놓았고, 그것으로 그날 저녁과 다음 날 점심에 만들어질 요리들을 상상하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현시대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극 중 아주 어린 소녀 폴린을 통해 미식을 처음 접하는 방법을 이미지로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일상적 언어로는 표현이 힘든 요리를 기쁨의 활동으로 펼쳐낼 수 있도록 팁을 전하듯 말입니다.

가자미 요리(Sole meuniere)

볼 오 방(Vol au vent)

이 작품은 2023년 칸 영화제 감독상에 뒤이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프랑스 대표작으로 출품되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출신의 프랑스 감독인 트란 안 홍의 아름다운 연출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그의 역작 중 하나였던 ‘그린 파파야 향기’의 여주인공인 쩐느옌케는 현재 그의 아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아마도 극 중 도댕과 외제니와의 관계성에 있어서 모티브가 되지 않았나 가늠해 봅니다.

이번 영화에서 쩐느옌케는 배우로서 참여하지 않고, 미장센을 위한 장소 연출이나 디테일에 대한 부분을 맡아 함께 일했다고 합니다. 키친 안에서 일어나는 도댕과 외제니 사이에서 흘러간 20년의 시간들은 요리가 완성되는 과정의 긴 호흡에 비유한 듯합니다.

캐비아를 올린 굴 요리

특히 많은 감정선이 혼재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빛의 움직임, 시간의 움직임을 표현한 감독 특유의 감성은 아련함이 가득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또한, 극 중 두 주인공을 연기한 도댕 역의 브루아 마지멜과 유제니 역의 줄리에트 비노슈가 실제 부부였던 사이임을 떠올린다면 더욱 영화 속 러브라인에 깊이 있게 몰입할 것 같습니다.

사랑을 계절의 흐름에 비유한 시적 표현만큼 아름다운 영화. 이 영화가 펼쳐내는 러브 스토리와 배고픔을 유발할 정도로 풍요로운 장면들을 즐겨보시면 어떨까요?

마침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과 뮤땅에서는 개봉을 기념하는 프로모션을 진행 중인데요. 영화 속 메뉴 ‘볼 오 방’ 과 ‘오믈렛 노르베지엔(omelette Norvegienne)’, ‘포토푀’ 등을 구현해 선보일 예정입니다. 영화가 끝나면 영화 속에 나온 음식들을 실제로 즐기면서 감동의 잔향을 길게 느껴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오믈렛 노르베지엔(omelette Norvegienne)



필자 소개 김 혜 준

사회에 나와 첫 직장인 프랑스 레스토랑 홀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고 프랑스 제과를 정식으로 공부했다. 입맛이 뛰어난 미식가이기보다는 맛의 조합과 구성을 좋아하는 즐식가가 되고 싶은 업계 16년차, 현재는 푸드 콘텐츠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스틸 사진 제공 :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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