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리본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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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리본 20주년 특집 기사> 서울의 미식 20년사

2024.11.21 10:47:47

* 2015년판에 수록된 서울의 미식 10년사를 정리하고, 2015년 이후 10년간의 내용을 추가하였습니다.

2000년대 초 여행 잡지 편집장을 하면서 여러 나라와 도시를 다녀봤지만, 2005년 블루리본이 처음 나올 때의 서울은 아직 미식의 도시라 할 만한 곳은 아니었다. 일식, 중식, 양식으로 구분되는 음식 장르는 각 나라 음식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하기 어려웠다. 그로부터 20년, 서울의 미식은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제 서울은 세계 미식가의 이목이 집중된 도시다. 2005년을 서울의 미식 붐 원년으로 잡으면, 연도별로 미식 키워드가 존재한다. 한때 유행했다 금방 사라진 것도 있고 점점 더 진화하여 현재는 대세가 된 것도 있다.


2005~2009


1970년대 이후 고도 경제성장을 거쳐 2000년대 이후에는 선진국의 문턱에 서게 된다. 이와 함께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미식과 레저 여행 수요는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 공유가 광범위해지고 인터넷 기반의 식도락 동호회가 형성되면서 이들이 대중의 미식 문화 트렌드를 주도하게 된다. 해외여행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해외 미식 여행도 하나의 트렌드가 된다. 주방장, 조리장에서 셰프라는 용어가 확산되고 셰프 이름이 브랜드화되며 소위 말하는 스타 셰프도 탄생하게 된다.

이 시기에 미식 정보의 공급 주체가 신문, 잡지 등의 종이 매체에서 인터넷 매체를 사용하는 동호회나 개인, 블로거로 이동한다. 이때는 미식 기준이 급속도로 상향 평준화되는 시기다. 미식 기준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은 시대이기도 하였다. 아직 파인 다이닝이라는 개념은 부족했으며, 호텔 레스토랑이 그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호텔 이외에는 청담동이 고급 레스토랑이 몰려 있는 곳이었고, 이 시기에 떠오르는 핫플레이스는 서래마을, 삼청동, 홍대앞이다.


2010~2014

비교적 안정적으로 질적인 팽창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시기다.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 모두 눈높이가 높아졌다. 음식 블로거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소위 파워 블로거가 등장하기 시작하고 이들이 미식 기준을 전파하고, 트렌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미국, 또는 일본을 통해서 이탈리안과 프렌치가 들어왔으나 2000년대 이후 직수입되면서 점점 일본과 미국의 영향을 벗어나게 되었다. 또한, 직수입이 가속화되면서 다양한 세계 음식이 선보이게 된다. 중식 분야도 양꼬치로 대표되는 동북식 중식으로 시작하여 다양한 본토 스타일의 중식이 수입된다.

초기에는 외국에 처음부터 요리를 배우러 간 것이 아니라 학문을 위해 유학 갔다가 현지 음식에 매료되어 귀국 후 식당을 여는 일도 많았다. 예를 들어 서울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중에는 이탈리아에서 음악을 배우다가 돌아와 오픈을 한 경우도 꽤 있었다.

2000년대 후반, 그동안 간헐적으로 선보이던 퓨전 한식이 한식 세계화의 급물살을 타게 된다. 이제 한식이 시각적으로, 미각적으로 한층 업그레이드하는 시기가 되었다. 전통적 미식가는 이러한 한식의 변형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다. 현대화된 한식을 어디까지 한식으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다. 이때 서양식 조리법에 한식을 접목한 뉴코리안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우는 정식당이 오픈하면서, 한식의 바운더리는 더욱 확장되기 시작한다.

소수 미식가만 찾던 계절 별미와 지방 별미가 범국민적인 기호 음식이 된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 공유가 확산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여름 보양식으로 민어회, 하모 샤부샤부를, 가을 별미 전어구이, 겨울 별미 새조개 샤부샤부, 과메기 등은 이제 보편적인 미식거리가 되었다. 제철 음식 즐기기는 이제 대중문화가 되었다.

요리를 전공한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해외 경험을 쌓고 돌아와 본토 수준의 감각 있는 요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은 1980년대 이전에, 미국은 1990년대에 겪었던 모습이다. 일부는 해외 경력의 유효성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짧은 기간이나마 선진문물을 구경하고 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음식 문화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홍대앞이 젊은이의 명소로 점점 그 반경이 확장되고 신사동 가로수길과 이태원의 경리단길이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던 시기다.


2015~2019


오너 셰프의 약진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다이닝 씬에 뉴코리안의 기반이 쌓여지면서 밍글스, 스와니예, 권숙수, 두레유 같은 현대화되고 실험적인 한식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 늘어난다.

한식이 진정한 의미로 현대화되고 있는 사이, 전통 한식도 재조명을 받게 되는데, 면스플레인이라는 유행어를 낳은 평양냉면이 그중의 하나다. 광명에서 시작한 정인면옥이 성공적으로 서울에 입성하게 되면서 노포의 DNA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평을 받던 평양냉면 계에 도전하는 신흥 냉면 명가들이 등장한다. 진미평양냉면, 봉밀가, 능라도와 같은 곳이다.

전통적인 한국식 고깃집도 변화를 겪는다. 소고기 등급과 부위 선정에 예민해지면서 투뿔등심(가로수길점)에서 다양한 부위를 코스로 맛보자는 시도에서 한우오마카세를 시작하였다. 이후 한우오마카세는 본앤브레드가 꽃을 피워 새로운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지금은 코리안 비비큐의 대명사가 된다.

막걸리와 전통주 붐을 타고 현대적인 분위기의 막걸리 전문점과 한식주점이 인기를 끈다. 한국식 일식집이 퇴조하고, 일본 본토 스타일의 스시 붐이 일기 시작한다. 코지마와 같은 하이엔드 스시야가 인기를 끌게 되면서 스시가 대중의 관심을 갖고 되었고 이후에는 지갑이 얇은 소비자를 공략하는 중저가 스시가 등장하면서 엔트리급 스시까지 생기게 되었다.

나무사이로, 커피리브레 등이 쌓은 스페셜티커피의 기반에 프릳츠 등 후발주자들이 등장하면서 커피 산업의 물결이 스페셜티 커피로 흘러가게 된다. 한국은 미국, 호주에 이어 주요한 스페셜티 커피 중심지가 된다. 리사르커피는 서울에 에스프레소 바 문화를 촉발시켰다.

프랑스에서 디저트를 배운 셰프들이 늘어나면서 일본식 프렌치 디저트에서 정통 프렌치 디저트로 변화한다.

대림창고가 시작한 성수동 카페 문화는 대형 카페 붐의 시작을 알린다.

홍대앞은 이제 연희동과 망원동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고, 최고 핫플레이스 경리단길의 이름을 따서 망리단길과 같은 핫플레이스를 지칭하는 밈이 생긴 것도 이 시기다. 서촌과 익선동은 골목골목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고 건대입구나 문래동도 홍대의 대안이 될만한 젊은이의 거리다.

스마트폰의 전 국민 보급으로 이제 인터넷의 파워 블로거 시대에서 모바일의 인스타그램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2020~2023


모두들 예기치 못했던 팬데믹의 시대. 국가 간의 교류가 중단되고, 해외에서 활동하던 실력 있는 셰프들이 많이 귀국하면서 파인 다이닝 씬이 질적이면서 양적인 팽창을 하게 된다. 해외로 나가지 못하면서 내수가 증가함에 따라 파인 다이닝 가격도 매우 오르게 된다. 그동안 단가 문제로 피했던 캐비아나 트러플 같은 고급 식재료를 적극 사용하면서 다이닝의 질이 올라가고 진정한 의미의 세계적인 수준이 도달하게 된 시기다.

하이엔드 스시도 일본 수준으로 높아지고, 가이세키에 대한 수요도 점점 늘어나서 청담동을 중심으로 모던한 가이세키를 선보이는 레스토랑이 늘어나고 있다. 이 시기에는 다이닝의 객단가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가던 시기다. 이는 후에 엔데믹으로 전환되면서 타격을 입을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파인 다이닝이 호황인 반면, 대부분의 외식업은 크게 타격을 받게 되는데, 그래도 고깃집들은 현상 유지를 하는 편이었다. 이는 젊은 외식 창업자들이 고깃집이라는 아이템을 선호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 금돼지식당이 불을 지폈던 프리미엄 돼지고깃집이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게 되는데, 대부분 개성 있는 고기 커팅법이라던가 특색 있는 사이드 메뉴 등 개발에 많은 노력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부담 없이 와인 & 다인을 할 수 있는 캐주얼 다이닝 바나 와인바도 이 시기에 많이 등장한다. 신용산과 같은 지역에는 낮에는 브런치, 저녁에는 와인바 문화가 확산되었다. 중저가 한우 오마카세도 등장하고 한식 요리와 전통주를 함께하는 한식주점이 유행한다.

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수준 높은 채식 레스토랑이나 비건 레스토랑, 내추럴와인바 등이 생겨난다.

최저임금제로 인한 인건비 상승은 1인 셰프 업장을 양산시키는데, 그중에서도 파스타 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바위파스타가 시동을 건 파스타 바에서 다양한 생면파스타를 맛볼 수 있게 된다.

다이닝에 대한 수요가 집중되면서 예약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때맞추어 나타난 캐치테이블과 같은 예약 앱은 치열한 예약 전쟁을 소화하면서 급속도로 성장하게 된다.

홍대앞이 주춤하면서 그 자리를 성수동에 내주고 있다. 신용산에는 캐주얼 다이닝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생기고 한남동은 고급 레스토랑이, 석촌호수 쪽에는 젊은이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들이 많이 생긴다. 그리고 마곡, 경의선숲길도 주목할 만한 성장을 하고 있다.


2024년 이후


서울의 파인 다이닝 시장은 2010년대 이후 오너 셰프 레스토랑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Asia’s 50 Best Restaurants나 La Liste 같은 해외의 미식 순위에 서울의 레스토랑들이 자연스럽게 상위권에 랭크되고, 한식, K푸드는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다. 세계는 물론, 국내에서도 파인 다이닝에서 한식이 이렇게 대세가 된 적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팬데믹이 지나고 드디어 좋은 세상이 돌아왔다고 안도하는 순간, 서울의 다이닝 씬은 새로운 위협을 받게 되는데, 바로 다시 열리게 된 해외여행의 관문이다. 당분간 보복 소비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내수를 다시 일으키는 것과 세계의 한식에 대한 관심을 국내로 돌리는 것이 현재 외식업계의 주요 관건이다.

파인 다이닝 시장과는 다른 타깃의 시장을 공략하는 젊은 레스토랑 사업가들도 약진하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본인이 인플루언서이거나, 아니면 주변의 인플루언서를 잘 활용하는 데 있다. 고깃집이라는 아이템을 많이 선택되는데, 고깃집은 재방문이 많은 아이템이고 주방에 필요한 전문 인력이 상대적으로 덜 필요하다는 점에서 요리사 출신이 아닌 사업가에게는 매력적인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끊임없는 연구, 사업화 아이디어, 체계적인 교육으로 어려운 외식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면서 고깃집 문화를 재정립하고 있다.

지금 가장 핫한 성수동과 신용산은 바운더리를 점점 넓혀가고 있으며 강남에서는 압구정이 다시 젊은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강남역이 압구정으로 옮겨왔다고 할 정도다. 앞으로 계속 발전할 여지가 있는 지역은 마곡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블루리본 서베이: 서울의 맛집>이 걸어온 20년을 회고해 보았다. 블루리본 서베이 서울의 맛집은 우리나라의 미식사에 큰 획을 그었다. 외식 산업이 발달하고, 미식에 대한 관심이 커져 나갈 때 변화에 앞장선 선구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도 블루리본 서베이는 한국의 미식사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할 것이며, 그 명성을 이어 나갈 것이다.


필자 소개 김은조

블루리본 서베이 편집장

2005년부터 대한민국 최초의 맛집 평가서인 <블루리본서베이>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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